가까이가기 질문상자
여수 향일암 가파른 돌계단을 지나 고즈넉한 길을 오르다보면 만날 수 있는 삼불 석상에는 나쁜 말을 하지 말라는 불언, 타인의 말에 평정심을 잃지 말라는 불문, 남의 잘못을 보려하지 말고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불견의 의미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남의 말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남의 말을 하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는 요즘이다.
엘라 핏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이 노래하는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를 듣는 중이었다. 이번 카드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니 음악을 끄기로 결정한다. 5분 시계 알람을 맞춘다. 천천히 호흡을 내쉬고 마시면서 몸 안에서 긴장을 내보내며 마음 깊이 주제를 느껴본다. 주의의 방향이 회복하는 방법보다 마음의 상처 쪽으로 빠르게 옮겨감을 알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열거하면 한둘이겠는가 느껴지는 무게와 감정들도 만만치 않다. 잠시 느끼고 회복하는 방법에 주의를 옮겨본다. 잘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다음 생각을 떠올려본다. 확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 그거구나. 좋은 힌트다. 확신의 정도와 강도가 회복하는 방법과 연결되어 있다고 조합된다. 생각들이 떠오르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글을 적어본다.
글을 어떻게 쓰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때마다 그 사람에게 맞게 대답을 해주는데 오늘의 나의 방법은 시간을 정해두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5분간 주제에 집중을 한 다음 10분 타이머를 맞추고 글을 적는다. 5분간 느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들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생각의 속도와 방향을 잘 느끼면서 함께 할 때 느끼는 일치감이 글쓰기의 희열이 아닐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마음의 상처를 한 가지 떠올려보면 고등학교 때 살았던 반지하 방이 떠오른다. 100%의 확신의 정도로 '나는 그때를 사는 게 힘들었고 슬펐다'로 저장되어 있다. 엄마의 친구인 쌀집 아줌마네 지하였는데 아마도 방으로 짓기보다는 창고로 쓸 용도였을 것이다. 주택의 부분 중 완전히 땅속이었는데 내려가는 계단 입구 외에는 창이 하나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우측에 싱크대가 있고 중간에 신발을 신고 다니는 넓은 통로가 있고 입구 맞은편으로 오빠의 방이었던 여닫이 문이 있었다. 바라보는 방향에서 그 방 오른쪽에 안방이 있는데 거실이 없이 외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통로 끝 면에 문이 하나 더 있는데 그쪽으로 들어가면 또 방이 나왔다. 역시 창이 없는 어둠의 공간이었다. 한번 그 방문을 열었는데 한 낮인데도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먼지냄새 같은 게 코로 스며들었다. 최근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그 특유의 냄새가 떠올랐었지.
우리 식구가 이사를 갔을 때만 해도 그 방에는 사람이 없어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1년쯤 지나서 그 방에도 사람이 이사를 왔는데 거의 동선이 겹치지 않아 누군지도 모른 채 싱크대가 있는 통로를 공유했다. 즉 문을 열면 언제든 외부인이 나타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아마 그때가 아빠는 마지막으로 사업을 망했을 때였을 것이다. 이후 사업에 도전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 공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고등학교 1~2학년의 시간. 불안하고 불편했던 감정이 쌓인 것을 상처라고 이름을 붙여둔 것이다. 벼락치기로 공부했던 나는 시험 때면 오빠 방에서 공부를 하다 밤이 되면 엄마가 얼른 불 끄고 자라는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내 방이 없는 것은 서러웠다. 오빠는 학교에서 매일 맞고 왔다. 그 학교는 선생도 선배도 모두 폭력적이었다. 학교에서 맞고 온 날은 아빠한테 또 욕설을 듣고 맞았다. 그 상황을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잠은 안방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 잤는데 거의 모든 날 아빠는 술을 드시고 들어오셨고, 밥상을 사이에 두고 늘 언성이 높아졌다. 괴로운 가운데 마음에는 짜증과 불편함 복수심이 쌓였는데, 그 당시 책을 많이 읽던 조숙한 나는 밝고 명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겉과 속이 많이 달랐다. 학교 동창들은 나를 밝고 명랑한 권 반장으로 기억하지만 나에게는 상처가 깊었던 시간들이었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해야하나? 고등학교 2학년은 내 인생의 최고 전성기로 생각되기도 하니까.
이렇게 꽤 오랜 시간 생각하고 살았다. 확신의 강도와 무게가 거의 100%였다. 이 서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 확신의 강도와 척도를 내가 정할 수 있는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마음의 상처라고 여기는 대부분은 외부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홀로 가만히 있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은가. 그렇다면 외부의 작용에 의해 그것을 마음의 상처로 만들 것인가 말 것인가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이 아닐까?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거나 좋은 풍광을 보면서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주제로 다가가서 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생각의 확신이 100% 상태일 때는 잠시 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주제로 깊숙이 들어가 숨 쉬고 느끼면서 그 주제가 나에게 주는 영향력을 줄이기로 결정하고 확신의 정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지성적으로나 영적으로 그 주제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드는 면에서 주의를 의도적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각자의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책을 읽거나 요가를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것(빼놓을 수 없구먼) 등등의 방법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 방법에만 머무르면 완전한 회복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그 상처를 온전히 호흡해 떠올리고 기억해 느끼고 그 시간이 내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완전하게 느낄 때 동전의 이면이 나타난다. 즉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때 모두 여리고 미숙했던 우리 식구들이 지독하게 건강하게 살아있던 그때. 함께 밥을 먹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간이다. 그때 나는 벚꽃축제 백일장을 만끽했고, 합창대회, 체육대회, 시어울마당, 가을 축제, 그리고 등교 전, 방과 후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정말 빛나는 십대를 보내기도 했었다.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빛과 그림자가 선명했다. 한 측면으로만 그 시기를 보면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다른 한 측면은 그로인해 더 없이 빛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전에 그 집에 대한 인상을 떠올리니 너무나 지치고 피곤해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지어먹고 낮잠을 잤다. 꿈속에서 20대 자취하던 어느 방이 입체적으로 묘사되면서 흉흉한 느낌을 주었다. 아 스물셋 집을 나와서 얼마나 많이 이사를 다녔던가 이를 두고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또 상처가 된다. 관점에 따라 마음의 상처를 만들 수 있는 것도 나다. 어쩌면 나는 콜럼버스나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원형으로 여러면에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내 속에는 아직도 이런 어두운 것들이 많은가에 대해 좀 실망이 되기도 한다. (이것들을 품기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던가) 나도 아름답고 똑똑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사람들에게 딱 필요한 실한 이야기들이 술술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실망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는 또 상처를 제조하겠지. ㅎㅎㅎ 상처를 회복한다는 말을 탐사하기에 앞서 상처를 만드는 습관을 멈춰야겠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