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가기 질문상자 7
어떤 존재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만큼 좋은 게 있을까? "비칠 영 올래 제 이름을 영래에요." 자주 자기소개를 하는 나의 어린 친구 영래에게 토요일에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영래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 기능이 멈추었다고 한다. 시리에게 요청해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나에게 대뜸 "이모는 마흔 살이 넘어서 좋겠어요.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한다. 아빠 안부도 물어봐 주고, 내 마음을 구석구석 누비고 밥 먹으러 간다며 전화를 끊었다. 씩씩한 목소리에 마음이 반짝인다.
가끔 영래에게 이모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은 Siri로 보낸 '사랑합니다' 문자가 왔다. 이토록 서슴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좋다. 나도 가끔씩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처럼 서슴없이 하는 적은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집 다육이랑 고사리, 스파티필룸 등 반려 생물들에게 서슴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줬다. 밝고 맑고 경쾌하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 내 마음도 좋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비춰주는 사람이 좋다.
지난 목요일은 해방촌에서 아언니가 찜닭을 사주었다. 흔쾌히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연희동 선리네서 함께 엄마가 해주신 반찬에 밥을 먹는 순간은 아무 계산 없는 순수의 순간이랄까. 너무 말초적이고 저차원적이지만 함께 먹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좋다. 먹는데서 느끼는 쾌락을 잃지 않으면서도 건강해지려고 하니 요즘 약간 힘들다.
지난가을부터 시작된 면역력 강화 미네랄 처방으로 못 먹는 것들이 많아졌다. 한 3개월은 그럭저럭 잘 지켰는데 1월에 다시 3개월을 해야 된다고 하니 괜스레 성질이 나서 하루에 한두 개 금지 혹은 자제 아이템을 먹고 싶으며 먹는다. 어제는 생각 태풍을 하면서 초콜릿을 3조각 먹었다. 카카오 60% 이지만 악마 같은 달콤함이었다.
먹어야 할 것들을 잘 챙겨 먹고, 자제하거나 금해야 하는 음식을 피하고, 매일 처방받는 아연과 비타민을 먹고, 약간의 운동을 하면서 낮았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체온도 많이 괜찮아졌다. 최근 코로나 19로 더없이 건강 관리가 민감해진 시간이 되자 그간 신경 써온 힘이 있으니 난 문제없어했지만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함께 힘을 내야 할 때다.
나에게 _____하는 사람이 좋다는 물음에 첫 번째 떠오른 사람은 20대 초반에 만나서 연애했던 S씨이다. 필체가 아주 좋았던 그는 정성껏 편지와 엽서를 써주었고, 나의 부탁을 언제든 들어주었다. 나보다 나를 믿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다. 아마 평생 고마울 것 같다. 지금은 수명을 다했을 것 같은 그 집 개 진돌이 생각도 많이 난다. 덩치가 꽤 있는 중대형 진돗개였는데 집 베란다에 살았고 매일 산책은 그의 몫이었다. 우리는 첫눈에 친해졌다.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여주는 동물들은 정말 사랑이다.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 때도 있고, 스스럼없는 따듯함과 친절함이 배어 나오는 사람일 때도 있다. 뭔가를 정성껏 몰입하고 있는 모습, 삶을 사랑하는 모습, 가까운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순간을 보여주는 비범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한다.
스타벅스 바나나 포장 비닐을 손으로 조몰락거리면 낙엽 밟는 것 같은 소리와 비슷하다. 스벅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가끔 1,500원에 간식 삼아 바나나를 사 먹는데 그 포장지가 주는 즐거움을 조금 더 길게 느끼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주머니에 넣어 가곤 한다. 그 질감과 소리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 하는 유치함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좋다.
20200308 일요일 오후 신촌 아트레온 CGV 스타벅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