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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 중 건강에 투자하는 시간은?

by 로사 권민희


이 질문을 잠시 느껴보니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날은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시간이 건강에 투자하는 시간이고 어떤 날은 명상하는 시간이, 어떤 날은 의식 훈련하는 시간이, 어떤 날은 걷는 시간이 투자하는 시간이다. 누적 시간도 매일 편차가 있지만 상당한 편이다.


오늘은 엄마를 위해 도시락을 만들었다. 회복이 필요한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내 마음 건강을 위해서 투자한 시간이다. 전복죽을 끓이면서 채소를 씻고 다듬었는데 일 인분 생활자라 많은 양을 할 도구도 품도 모자랐다. 모두 만들도 정리하는데 2시간. 그냥 마음을 한껏 담아 봄을 선물하고 싶었다. 가는 길에 프리지어 한 단 사 건네고 따뜻한 수건으로 발을 씻어줘야지 하며 서둘러 출발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여유를 사랑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어 감사하다.

홍제에서 군포 병원까지 이동시간 1시간 40분. 버스 두 번 지하철 한 번 환승해서 가야 한다. 개인 소지품이 든 배낭과 음식을 담은 손가방을 들고 서둘러 나섰다. 머리가 제법 길어 묶었는데 볕이 좋다.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와서 어떤가 싶어 카메라를 거울삼아 보니 마스크를 거꾸로 썼다. 웃음이 피식 났다.

코로나로 물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가족을 돌봐야 하는 것은 조금 예외지 않을까 하며 조심조심 병원으로 향했다. 마침 신도림역에서 급행열차를 탈 수 있었다. 행운이다. 엄마를 모시고 미국 플로리다 데이토나비치에 위저드 코스에 참가했을 때가 2014년. 그때도 이런 가방에 도시락을 넣어 호텔에서 코스장을 다녔었지 기억난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니 점심 식사 시간이 제법 지났다. 엄마에게 먹지 말라고 전화해둔 터라 식판을 그대로 두고 계셨다. 오늘의 메뉴는 전복죽과 동백기름 드레싱의 그린 샐러드, 당근 볶음, 쑥갓무침, 오이와 미나리 등의 야채, 후식으로 토마토를 썰어 원당을 뿌리고, 유기농 사과즙을 챙겼다. 의외로 엄마가 나의 시그니처 샐러드를 맛있게 드셨다. 손으로 먹기 좋게 뜯은 잎채소와 오이, 동백기름 드레싱이 신선하게 느껴지셨나 보다. 전복죽은 생애 첫 도전해보는 거였는데(나는 게도 잘 못 먹는다) 활전복 손질하느라 진땀을 뻘뻘 흘리고 '왕생극락'을 외치며 어렵게 완성했다.

식사 돕고 머리를 감기며 고향의 봄, 깊은 산속 옹달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몸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환의를 갈아입히고 뒷설거지하고 나니 오후 두 시 반. 두유와 물을 드시게 하고 어제 산 오은의 산문집 '다독임' 책을 한 권 읽어보라고 권하고는 유유히 병원을 나섰다. 엄마의 병원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2시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바디워크 세션이 있는 날이라 이태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지하철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포스터가 눈에 띄어 선생님께 전화로 의논을 했다. 이번 주는 서로를 위해 약속을 미루기로 하고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버스 안에서 바디워크 선생님이 고맙다. 3월부터 시작해 3번의 세션을 마쳤는데 몸이 한결 가볍다. 덕분에 지난주부터 시작된 엄마 간병을 잘 해낼 수 있었다. 오늘은 제법 많은 시간을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투자했다.


잘 살펴보면 나의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이 건강과 관련이 있다. 일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건강이 내 삶의 테마인 듯도 싶다. 건강에 많은 관심을 쏟은 시간으로 보면 20대에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인 것도 같다. 선택의 기준도 대부분 건강에 기준점을 두는 편이다. 소비도 그렇다. 생협을 주로 이용하는 이유가 지구 환경을 살리는 것도 있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다. 이쯤 되면 건강 지상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