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가기 질문상자
분명히 장례는 지난해 10월에 치렀는데 감각은 100여일이 지난 후 시작되었다. 1월 후반부터 빈 자리가 느껴졌다. 아빠의 자리는 너무나 컸다.
더욱이 아빠가 가시고 나니 스물셋 이전 함께 식구로 살았던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음을 인지하기 시작하니, 뭔가 세상 홀로 남은 기분에 자주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현타가 시작되던 2월 세상 힘든 거 다 짊어진 것 같았다.
워낙 위가 예민해 술도 담배도 안하고 지난해 말부터 체온, 혈압이 낮아서 미네랄 관리와 식이요법도 하고 있는데 체하는 증상이 자꾸 일어나 걱정도 하게 되었다. 자면서 이를 악물고, 미간이 찡그러지는지 주름도 눈에 띄고 턱도 아팠다.
"잘 지내?" 한 마디에 마음이 우르르 무너질 때도 있고, "요즘 어때?" "안녕하시죠?" 하는 사소한 질문에도 민감해졌다. 민감한 스스로를 미워하니까 더 좌절에 빠질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어느 기사 댓글을 보니 우리 국민들 위기 극복이 취미라던데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ㅋ 3월이 되자 정신이 바짝 차려지면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플백 프로젝트도 오픈하고 하루 하루 내 마음을 내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3월에 엄마의 어깨 수술 날짜가 잡혔고 용감하게도 엄마는 미루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서 간병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했다. 전쟁터 같은 병원에서 닷새를 보내고는 감기 몸살 증상이 왔는데 마음이 더 단단해져서 인지 증상도 금새 가라앉기 시작했다. 역시 면역 기능이 아주 좋군 하면서 며칠 웃었다.
'어떻게 살거야?' 하는 질문을 내게 종종 묻는데 이제 그 질문에 대해서 조금 지루해졌다. 길이 안보일 때 길이 어딘지 모를 때 가만히 그 자리에서 나에게 묻는다. '어떤 길을 가고 싶어?' 그 길에 닿을 때 까지 뚜벅뚜벅 가끔 춤을 추며 가다보면 반드시 닿을 것을 이제는 안다. 나에게도 이번 백일이 어떤 면에서든 변곡점이 될 것 같다. 함께 걷는 길이라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