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가기 질문상자 49
손열음이 연주하는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치를 않아' 거쉰의 피아노 곡을 들으며 쓰기 시작한다. 오후 2시 24분. 연주도 대단하지만 손열음의 헤어와 드레스는 언제나 멋지다. 요즘 유투브에서 좋은 연주를 정말 많이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토요일 밤이었다. 종일 비가 내려 음이온이 가득해 조금은 들뜬 저녁이었다. 늦은 저녁 출출함에 '연희동에 갈까' 생각 하는데 A에게 카톡이 왔다. 성산동에 있는데 올래? 술을 안마신지 오래된 터라 늦은 저녁 약속은 거의 없는 편인데 낯설면서도 익숙한 초대였다.
오래된 친구와 함께 하는 순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부슬부슬 계속 내리는 비. 택시를 타고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2명의 친구의 선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함께 누룽지 통닭을 먹으면서 가져간 가까이가기 질문상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도 이 질문이 나왔다.
우리가 모인 곳은 둘 중 한 선배의 사무실이었는데 그는 이 질문에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바람을 이야기 했다. 불확실의 시대라고 하지만 10년 후를 느껴보고 그때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상상하는 일은 그 순간 모두에게 공간을 확장시켜 주었다.
30대에는 10년 후 코로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환경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기술의 변화와 환경의 변수, 둘 중 어떤 요소가 내 삶에 더 크게 작용할까. 지금 시점에서 10년 전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좀 해주고 싶다. 좀 더 주변을 둘러보고, 가까운 사람들을 돌보고 챙기라고.
그 자리에서 어떤 단톡방에 초대되었는데 00모임의 20주년 기념 온라인 Zoom화상회의 일정을 잡고 있었다. 절반은 아는 사람이고 절반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이 20년 전이라니 와~ 그때 나는 그 친구들과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 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빠르게 서로의 관심사를 따라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고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어제 저녁 9시 무렵 초대된 단톡방이 20년 전의 나를 소환했다.
가시가 많았고 예민했던 나로 인해 상처 받았을 사람도 있었을텐데 싶어 부끄럽고 어색한 감정도 느꼈다. 바로 인사를 건내지 않고 오늘 오전에서 인사를 건냈다. 20년 전의 실수는 그대로 남아있겠지만 이제 이 사람들을 더 귀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은데 그때 서로를 좋아했던 그 마음이 느껴졌다.
스물여섯 처음 상주가 되었다. 오빠의 죽음을 겪으면서 나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흔까지 살면 오래 살겠구나 섣부른 예측을 했다. 사는 동안 몸을 잘 돌봐야지 했는데 잘 돌본 덕분에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있다. 이런 추세면 앞으로 10년도 불시에 사고를 겪지 않는한 살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 의식에서는 어제 그 선배처럼 오래 살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지금 덤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은 종종한다. 10년 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했다. 10년 후 나에게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유연하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공유해주길 주문해본다.
10년 후 민희에게. 너를 위해 오늘은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갈지 한 번 더 생각해볼게. 존경하고 사랑한다.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구나. 그때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지금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바라봐줘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