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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May 29. 2020

우리가 함께 만든 5월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선물


아홉살 O. 그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19년 3월이다. 충주 깊은산속옹달샘에서 열린 힐링콘텐츠 캠프에서였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Y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깊숙하게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시각장애 아동을 출산하고 겪었던 많은 감정과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해왔던 도전들. 그 시간들이 느껴져 금새 나는 그이의 편이 되었다. 


숲에서 만난 그녀의 이야기와 이야기 속의 아이 O는 계속 나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처음 우리가 대면한 것은 아빠의 호스피스 병실이었다. 아이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손이 고우시네요."로 이야기를 시작해 "어서 나아서 집에 가시라"고 했다. 병실에서 조잘조잘 아이가 선물하고 간 맑고 명랑한 에너지는 큰 선물이었다.


주말 저녁 정체를 뚫고 대전에서 올라온 아이의 네 식구는 편의점에서 사온 것들을 가족 면회실에서 맛있게 먹고, 놀다 갔다. 그 후로 종종 O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는 맑고 밝았다. 나를 웃게도 하고, 가끔은 훅 들어와 눈물을 쏟게도 만들었다. 


아이와 죽음에 대해서 여러번 이야기를 나눴다. 내 인생에서 해볼 수 없었던 경험. "할아버지가 하늘 나라로 가셨어."라는 말을 요리조리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는 나에 대한 개인 신상을 두루 알아가더니 "이모 외롭겠네요."  했다. 그 말이 너무 맑아서 꼼짝 못할 지경이었다. 


나도 아이 이야기를 여러모로 듣게 되었다. 지난해 처음 입학한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들, 짝꿍하고 잘 못 지내는 얘기 등. O한테 처음 듣는 세상, 새로운 각도에서 듣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도 O를 배워가고, O도 나와 친해지고 있었다. 


올해 2학년이 되는 O는 학교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점자 공부하는 것도 어려워해서 코로나로 등교를 안 하는 게 별 문제 아닌 것처럼 얘기 했다. 하지만 학교 에피소드가 없는 O의 이야기는 반복적이고 재미가 없었다. 


유래 없는 펜데믹으로 모두가 새로운 삶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가운데 시각 장애 어린이에게는 더더욱 이 시간들은 쉽지 않았다. 주요 동선이 다른 아이들보다 적은 데다 세상의 폭이 절반 이상 뚝 잘려나간 기분이 들었다. 


비록 볼 수 없지만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 친구를 위해 어설프게 시작한 프로젝트로 나는 유튜브도 갑자기 하게 되었고, 5월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목소리를 나눔 해주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5월 한 달 5차례의 녹음을 하며 연결 된 사람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들이지만 녹음을 거듭하면서 목소리가 닮아가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했다(나만 그랬나). 


신뢰라는 것이 좋은 마음으로 함께 연결되는 순간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 어떤 조건이나 서로의 눈치봄 없이 어우러지고 맞춰가는 여정. 우리가 함께한 것은 그 새로운 도전이었다. 


녹음을 하면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동화가 전해주는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의 마음은 서로를 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Zoom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뭔지 모를 든든함과 감사함. 


코로나19로 인해 일어난 에피소드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고 그 시간을 보내는가에 따라 먼 훗날 다른 결과를 만들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것은 작은 몇개의 에피소드지만 먼 훗날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이겠지. 함께 5월의 시간을 만든 친구들에 깊은 사랑을 느낀다. 






* 이 오디오 클립을 재생하면 다음 클립으로 쭉 연속 재생이 되는데 정말 사람들의 목소리가 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82/clip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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