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나에겐 '일하는 게 놀이고 삶이 힐링 컨텐트'라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딱히 피서 혹은 바캉스를 갈 필요를 못 느끼고 살아왔다. 누가 가자고 해야 가는 수준? 그런데 2018년 여름의 더위와 마흔이라는 나이는 의도적인 피서가 필요한 좋은 충분조건이었다. 마침 마음피트니스 친구 회사인 가평 대성리 라스블랑카스 펜션 Won이사님의 제안은 움직임을 만드는 변수로 작용되었다.
이 공간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분들이 만든 곳이라 가깝게 기여하고 싶어, 회사 워크숍 오는 분들을 위해 마음피트니스 서비스를 제휴하고 운영진과 다양한 의논을 나누는 곳이다. 공간 속에 실제 머물러 보니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개성 있는 시설, 느슨하고 이국적인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내려오는 산 바람과 검은 밤하늘이란.. 으응... 피서란 이런 것임을 느끼게 해 주었달까)
더운 날씨에도 목표를 만들어 추진해 나가는 운영진에게 힘을 북돋고,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자 공간 곳곳을 누. 리. 는 호사를 경험했다. 큰 쉼의 공간을 제공해준 이사님들께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떠나는 날 아침, 산책을 마치고 이 곳에서 며칠간이 앞으로 내게 가져올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1. 친절하고 정성을 다하되 무심할 것 2. 용기 내어 자기표현을 할 것 3. 내가 걷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살펴보기 등으로 요약이 되었다.
친절하고 정성을 다하되 무심할 것
2박 3일간 나는 무엇을 했나? 마음이 놀지만은 못했다;;; 대성리로 가는 길에 접한 노회찬 의원의 별세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그를 실제로 본 것은 사당동 살 때 선거 유세 나온 모습뿐이었다. 이후 방송에서 만났던 그는 '맨 정신으로' 두려움 없는 소신 발언을 하는 모습으로 쭉 마음이 연결되어 있있다. 정치인들 특유의 느낌과 달리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눈을 맞추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명확한 말들을 귀 기울이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은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는 그렇게 내게 행복을 주는 존재였다.
'애별리고' 좋아하는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라스블랑카스에서는 그 슬픔을 탐사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를 마음 수용하는 태도는 그가 얼마나 친절하고 정성을 다하는가로 알 수 있겠다. 다만 집착 없이 무심한 마음으로. 무심하다는 것은 냉정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집착이 없음임을 이번 죽음을 통해 맞닥 뜨린 나의 집착을 보면서 다시금 배워간다.
우리가 이 생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용기 내어 자기표현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 같다. 노 의원의 소식에 이어서, 평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공유한 이슈를 접한 것은 이튿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동문회의 취소 소식과 함께 왔다. 그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로 나의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 동문회 참석은 정성껏 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었는데 그 주의가 이슈로 옮겨가게 되었다.
2016년 약한 연결을 통해 새로운 관계 형성이라는 주제로 60여 명이 모여 매주 월요일 저녁에 2교시에 걸쳐 구성원들의 삶을 주제로 발표하는 방식의 새로운 대안대학이었다. 이곳에서 여러 낯선 분야에서 일하는 또래들이 모여 그동안의 삶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공감하고,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콜라보라 표현한다)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올해로 3기를 맞이하고 20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브 커뮤티니까지 조직되어 적게는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에 적을 두었고, 관련 키워드로 더 많은 인원들이 확대되어 '뜻을 맞추고'있는 곳이다.
한편 이곳의 소통 방식은 잦은 음주 모임과 뒤풀이를 통한 친목이 주를 이뤘고, 이곳에서는 주취를 핑계로 약간의 폭력(무시와 혐오, 거친 행동)도 허용되기도 했다. 사람 사는 곳이 그런 거지 했지만 내 마음은 동참이 안되었다. 내가 그 모습을 회피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1기의 구성원 한 명의 불미스러운 행동이 전체 의도와 어긋나니 퇴교 조치되었고, 동문회는 취소되었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라스블랑카스에서 주어진 여유로움 덕분에 내 몫의 부끄러움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이 감정의 정체는 이 모임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자기기만과 회피의 결과물이었다.
용기 내어 자기표현을 할 것
어떤 사건은 개인의 책임과 더불어 사회적 역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 의원의 죽음과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나는 무기력해지고 힘이 빠졌다. 하지만 그렇다 할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불편했다. 괜히 얘기하면 그 사회의 분위기와 반할 것이고 잠시나마 소외될 것이 두려웠다. 조용히 묵인하고 싶었다.
커뮤니티 안(즉 카톡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맨 정신으로' 올린 글을 보면서 나도 내 목소리를 내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존재를 침해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하여 징계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사회가 주로 하는 방식이 아닌가. 진정한 존중과 신의, 그간 쌓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피해자, 가해자 모두를 품고 나가려면 우리는 함께 반성하고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품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벌이는 자기 파괴적 행동에 대하여 관대한 것은 오히려 잔인한 일이다. 서로에게. 그리고 구성원 각자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죄책감을 전가하고 죄를 묻는 사회에서 진보를 꿈꿀 수 있을까?
동문회는 취소되는 게 아니라 이번 이슈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랑과 존중을 배워가는 장을 만들지 못하고 죄의식에 바탕을 둔 응징을 해결책으로 내놓은 듯 느껴졌던 대책위에 아쉬움을 전달하고 여러 차원에서 함께 하겠다는 결정을 꺼내는 것이 내 방식의 자기표현이었다.
3년의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가진 사랑과 관심으로 나는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00 구성원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씁쓸함만 남길 건지 정말 자신 안에서 어떤 결정으로 사람을 소중히 여길 것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란다고.
비난과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호도 중하지만 그 차원을 넘어 각자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열린 관점에서 나눠보기,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것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혼돈하는 것에 대해서 나눠보기, 젠더의 역할을 포괄해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표현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아까운 사람들이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상도 민감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와 커뮤니티 문화의 부재가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으로 탈퇴한 인물도 문화를 만드는 업체의 대표인데 그가 느낄 자괴감도 클 거라 느껴진다. 그간 그 친구와 우정을 나눈다는 이유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커뮤티니 친구들은 그 친구가 제외되지 않도록 정서적 치료와 행동에 따른 책임을 배울 수 있도록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좋겠다. 맨 정신으로.
내가 걷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살펴보기
라스블랑카스를 다녀와서 이틀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SNS는 노 의원의 장례식 소식으로 점철되었다. 나와 가까운 지인들은 모두 영향을 받은 분위기였다. 그가 보여준 '맨 정신'의 용기와 위트는 아마 역사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것 같다. 오늘 오후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휩싸였던 A지사의 판결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그 사건을 접하며 나도 으레 껏 죄의식에 기반한 처벌 중심의 사고방식에 있었음을 반성한다. 그리고 그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내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하고 품을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기만하지 않고, 방향성을 살펴보고 그 걸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던 대성리에서 2박 3일의 피서. 뭐 이건 피서 후기라기보다는 마음 살펴보기 특별 훈련이랄까? ㅎㅎㅎ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오후를 함께 보낸 오랜 지인 가족과의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펜션을 운영하는 L, K부부(그들의 결합에 내가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소개로 결혼한 S, P 부부와 3남매, 모두가 함께 모였던 숙소 앞 바비큐 테이블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서로의 연결이 모여들 때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 우리가 앞으로 걸어 나가는 힘이다.
내가 걷는 인생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함께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나는 나의 삶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가꿔야 할 책임을 느낀다. 덕분에 내가 용기 내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나는 나 자신의 목표와 내가 속한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트림 탭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
참 신기한 것은 '피서'라는 명분으로 어딘가를 다녀오니 서울에도 바람이 아침저녁 선선해지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유난히 더웠던 2018년도 여름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슬픔과 아쉬움의 자리에 용기와 사랑을 채우면서. 뚜벅뚜벅 사뿐사뿐.
노회찬 의원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2018년 7월 27일 금요일 홍은동 CAFE GAGA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