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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Jan 10. 2017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린 것들

9월이면 비빔면이 맛이 없어지는 이유

좋아하는 것 중에 비빔면이 있다.

올해는 한 개도 먹지 않아서 8월에 장 보면서

요즘 한창 애정하는 브랜드 ㅇㄸㄱ 제품으로 샀다.

그런데 지방으로 왔다갔다하면서 도무지 뜯을 시간이 없지 않았던가.

오늘 아침에도 떡하니 눈에 띄는데,

도무지 먹을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며

언젠가는 내게 가치있고 옳았던 선택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11월 중반이 넘어서야 9월에 시작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오늘은 11월 22일 소설.


지난번 브런치에 보관한 '그가 적어보내준 글'에서도 공감하듯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린 것들이 드러나고 알게 되는 것은

분류가 일어나고 갈피가 잡혀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결과를 준다.

지난 10월 프로코스를 다녀와서 내게 가만히 떠오른 상실감을 느껴보니

내 인생에서 알게 모르게 의존했던 세 사람, 오빠, 할머니, 새엄마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들이

내 의식에 구멍을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간간히 느끼는 것이지만 의식에 드리워진 무늬와 망사들이 어디 한 두개련가.

돈을 적게 가진 상태를 생존의 위협이라고 인식되는 지각 시스템은

생존 본능에 기반한 의식의 구멍이었고,

감정적 부하가 가져오는 '옳음'이 삶에서 잘못된 선택을 가져올때도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다른 관점에서 똑같은 세 사람에게 의존하고 의지해왔던 한 사람이 드러난다.

아빠.

그가 올해초 위저드에서 보여준 이야기들이 어쩌면 자신도 인정하지 못하는 상실감을 드러낸 것인데, 나는 그의 모습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공감이 이제 비로소 일어난다.

그는 어떤 신념을 경험하고 있을까.



내 인생의 따뜻했던 순간에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엄마와 시계 공부를 하던 이미지. 플라스틱 시계는 실제 운용이 되지 않고 시계 공부용으로 있었던 것 같다. 안양의 단칸방에 둘이 앉아 짧은 바늘은 시이고, 긴 바늘은 분이다. 바늘을 돌려서 이것은 몇시 몇분이냐? 물어보는 엄마의 음성. 투명하게 기억나는 그 음성. 나는 그때 돌봐지고 양육되고 있음에 얼마나 큰 안도를 느꼈던가.



어릴 때 여름 방학이면 정읍 시골에 내려가곤 했다.

겨울 방학에는 할머니가 서울의 자손들 집을 두루 돌아다니셔서 여름방학에 주로 갔구나 싶다.

저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오빠에게 큰 방에서 줄넘기로 맞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그것이 멈춰졌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을 학습한다. 아버지의 폭력과 엄마의 저항을 우리는 그렇게

고스란히 반복하고 짐승처럼 '놀았다'.

참 흉흉한 기억이 많았음에도 오빠의 죽음 이후 그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 미움 뒤에 얼마나 많은 의존이 있었는지 마흔이 된 이제서야 지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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