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하루 5분 너그러움 키우기 12일째

by 로사 권민희

월요일 오후 8시 23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돌아보면 나의 사상과 철학이랄 수 있는 기준점들이 96세경 몸을 떠나 본래 자리로 돌아가신 할머니 김말녀 옹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다. 2005년 100일간의 행자 생활을 마치고 귀촌을 생각하며 할머니께서 계신 정읍에 약 8개월간 내려가 함께 살았었는데, 할머니의 말씀, 행동 여러 면들이 그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면 혀를 내두를 것들이 많다.


가령 마당에서 뭔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채소를 삶은 물을 버리거나 할 때처럼 뜨거운 물을 버릴 때 "뜨거운 물을 버린다." 말씀을 하신다. "누구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물으면 미물들도 다 듣는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하셨다.

냉장고, 밥통, 가스레인지와도 종종 대화를 하시곤 했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것은 무엇이든 오래 망가지지 않고 쓰는 이유가 모든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할머니의 태도 때문였음을 그때는 갸우뚱하던 것들이 지금은 이해가 간다.

가을, 볕이 좋을 때 온갖 것들을 말리는 시간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가지, 호박, 각종 나물들.. 고추, 깨 모종, 콩 모종 등등을 널고 말릴 때도 그분만의 순서와 방법이 존재한다. 무엇 하나 하더라도 '가지렁 가지렁 해야 하니라'하는 목소리. 손이 투박한 손녀는 맨날 혼나느라 바빴다. 할머니의 정해진 룰과 기준점들이 하나같이 불편해서 불만이 가득했던 나는 겨울이 되자 소복한 눈이 내리는 정읍을 떠나 태국이며 인도며 여행을 하고는 서울로 복귀했다. '할머니는 유난스러워'하면서 말이다.

할머니 본인만의 고유한 삶의 태도들, 4시에 일어나 혼자서 매일 미사 책을 펴고 기도하시고 5시가 조금 넘으면 밥을 안치고 마당 남새밭을 돌보고 6시쯤 돌아와 아침 뉴스를 보다가 잠시 눈을 붙이셨다가 7시쯤 아침 식사를 하고, 느릿느릿 이것저것 본인 스케줄을 소화하시고는 6시에 돌아와 6시 내고향을 보며 쉬시다가 저녁을 차려 드시고는 연속극을 보다가 잠드는 일상. 일요일의 성당 나들이를 위해 꼭 목욕재계하시던 모습들.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어쩌다 손녀가 훼방꾼이 되면, 잠시 성질도 내시지만, 이내 즐기는 여유. 할머니를 기억하면서 그 분만의 ‘편안함'을 느껴본다.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유년을 보내며 할머니와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 때던 기억,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마다 내려가서 시골집을 새로 지을 때 부엌데기로 부역하던 기억, 겨울 방학이면 서울 올라오신 할머니와 방을 함께 써야 해서 심통 부렸던 기억. 80대까지 버스로 자양동이며 중곡동이며 서초동이며 자식들 집을 찾아 휘휘 다니던 할머니와 함께 버스를 탔던 순간들까지. 자립적이고 무엇이든 깔끔하게 잘하시는 성품이었던 할머니 곁에서 있을 때면 나는 나를 편하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뭔가 잘하려 들면 실수가 많고 편치가 않았던 것이 이런 습관으로 연유함이려니 싶다.


2013년도 초반 제주에서 할머니의 부고를 들어을 때가 기억난다. 바람이 많이 부는 월정리에서 모래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럼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고 그저 먹먹했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 중 한 명인 할머니를 떠올리면 아직도 뭔가 잘하지 못하는 어린 내가 느껴져 썩 편치가 않다. 예쁨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놓아지지 않는 까닭이다.
8시 53분 글을 마무리한다.





https://youtu.be/44QxV6ZWv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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