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순간들
'일상을 변화시키는 솔루션을 공유한다'는 슬로건으로 사업을 시작한지 햇수로 10년째에 접어든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왔는지 매일 짬을 내서 기록해보기로 마음 먹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서 자판위에 손을 얹었다.
이 스토리가 시작되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H건설의 홍보팀 경력직 면접장. 출판사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매일 아침 저녁과 모든 주말을 명상과 내적 치유 작업을 공부하기 위해 힘을 쏟았던 그때. 또 한편에서는 월급도 올리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에고의 목소리를 따라 서류를 냈는데, 합격이 되었고 면접을 보러 갔다. 이게 바로 그때의 내 상태였던 것이었다.
회사에는 면접보러 간다하지 않고 아이보리색 정장을 큰 쇼핑백에 싸와서 강남구청에서 안국역까지 가서 화장실에서 갈아입고는 커다란 건물로 스미듯이 들어갔다. 몇명을 뽑는지 모르겠지만 교육장 같은 곳에 약 20여명의 사람이 족히 온듯했다. 이후 번호와 이름을 부르면 면접장으로 약 4~5명이 들어갔다. 그곳에서 예전 잡지사에서 일할때 선배며, 자원활동하던 단체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윽고 나의 이름이 불렸고, 면접관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좁은 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4번째인가 내게 질문이 돌아왔다.
"권민희씨는 주말에 뭐하세요?"
잠시 주춤하는 마음.
'나는 주말에 뭐하지? 영적 각성을 위해 명상을 한다고 답해야 하나? 이곳은 현대건설인데?'
겨우 중간쯤 답을 찾은 것이
" 네 저는 주말에 여행을 합니다."
(당시 거의 모든 주말 지방으로 명상 및 치유 워크숍을 다녔다.)
다시 돌아온 질문
"누구랑 어디를 가나요?"
다시 주춤. 솔직하게 얘기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네 저는 주변 풍광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내면을 보는 여행을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안동에서 열리는 가족테라피 워크숍을 다녀왔어요."
"아 네."
그 후로 면접관 누구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 문을 나오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 가슴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뭔지. 그동안은 남의 이목에 의해 혹은 어린 시절 동경하던 환상을 쫒으며 일을 선택해 왔다. 나라는 사람은 빠져 있는 채로. 내 가슴에서 연결된 '그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가득 용기가 생겼다.
직장으로 돌아가 사의를 표하고, 2010년 2월말일자로 '내 삶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3월이 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측근이었던 선배를 따라 다른 출판사에서 40일 가량 일을 하기도 했다. 막연함을 대하는 것이 불안했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불안함과 두려움을 언제까지 도망칠 수 없었다. 시작하기로 했다. 2010년 4월 내가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 수련해오던 가족치유 프로그램의 서울 워크숍 오거나이저와 개인 힐링을 위한 명상 바디워크였다.
그간 명상을 함께하던 도반들을 중심으로 클라이언트가 생겼지만 외부에서는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2011년부터는 충무로, 홍대, 여의도 등에 힐링 클래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도 지인이 중심이었고, 1회성에 그치곤했다. 7주 프로그램으로 함께하는 이는 매우 적었다. 그때 함께해준 친구들이 지금도 깊은 감사함으로 남아있다. 클래스를 열었지만 혼자서 하기 일쑤였다. 내가 좋아하는 '깊이있는 명상'의 세계를 공유하려면 머리를 깎거나 수행공동체에 들어가야 하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 하는 것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습관처럼 머리를 맴돌았다. 외부적으로는 아버지의 교통사고(2010년)와 새엄마의 뇌출혈(2011년)까지 어려움들이 닥쳤다.
그 와중에 이 일을 계속 해나가기는 어렵게 느껴졌고, 돈을 벌기 위해 해야할 일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배우기 시작한 것은 '원하는 일을 해나가면서도 닥친 위기를 어떻게 품고 함께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들여다 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