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 명자 씨.
서울은 벌써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봄을 만나는 게 참 더디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있네요. 월요일은 유난히 하루가 길어요. 늦은 밤 편지를 쓰려고 자판기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눈을 감고 몸을 느껴보았어요. 눈꺼풀이 살짝 떨리고 숨이 크게 내쉬어지네요. 오늘 하루 애쓴 나에게 감사해요.
명자 씨도 오늘 하루 숨 쉬느라 애쎴지요? 그 마음을 느껴보려고 해도 잘 느껴지지가 않아요. 지금 어떤 느낌일지, 명자 씨의 의식은 어디쯤에 있나요? 지난주에 전주로 익산으로 응급실 여행 다니느라 피곤했을 텐데 곤히 잠들어 있으려나요?
그렇게 조용조용 지내는 당신, 지난 화요일 전주 대학병원의 혼잡한 응급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단박에 어디 있는지 찾아지더라고요. 그곳에서 제일 예뻤거든요. 여전히 고운 명자 씨의 얼굴, 2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렇게 누워만 있은 지.
걸레도 행주처럼 빨아 쓰던 부지런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누워 있을 수가 있데요? 가끔 명자 씨는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시골 내려가서도 곱게 화장하고 집안 안팎을 청소하던 당신, 그 부지런한 손을 한참 잡고 있었어요. 따뜻하고 폭신했어요.
왜 따뜻하고 폭신한 느낌을 떠올리는데 눈물이 날까요? 그래요, 명자 씨 손은 별로 폭신하지 않았거든요. 바지런해서 좀체 붓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명자 씨만큼 바지런하지 못한 나는 늘 잔소리를 듣곤 했죠. 이제 그 잔소리조차도 그리워요. 그날 병원을 나와 서울 가는 버스에서 이제 명자 씨랑 이별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조금 담담해진 거 섭섭해 말아요.
신작로가 생기기 전, 정읍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은 자갈길에 모래 바람 날리는 길이었죠. 큰 자갈이라도 만날라치면 쿵쿵 몸이 함께 튀어 오르던 네 살 무렵의 버스 여행길이 떠오르네요. 부모님이 헤어지면서 할머니 집으로 보내진 어린 남매, 정민이 오빠와 나를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나요?
나는 명자 씨를 언제 어떻게 처음 봤는지 기억이 없어요. 아마 내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테죠? 그때 명자 씨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우리를 만나러 왔었죠. 할머니께서는 새로 엄마가 온다고 했어요. "새로? 엄마?" 엄마라는 말을 한 시간이 꽤 흐르고 만났던 새로운 엄마, 나는 명자 씨가 마음에 들었어요. 시원한 콧날과 쌍꺼풀진 큰 눈, 하얀 피부까지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 같았어요.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해서 잠들곤 했는데 그런 나를 폭 안아주던 젖가슴이 참 푸근했어요.
그러고 보니 겨울이었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 먼지 공주처럼 지내던 나만 먼저 데리고 도회지 안양으로 이사와 예쁜 옷을 사 입혀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새엄마, 명자 씨는 어린 시절 내게 여신이었어요. 공주님이 된 것만 같던 몇 달이 지나 정읍 할머니 집에 남아 있던 정민이 오빠도 올라와 네 식구가 안양에서 처음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내 질투가 시작된 것 같아요. 아들인 오빠를 더 예뻐한다고 늘 샘을 부렸죠. 돌아보면 오빠랑 명자 씨는 찰떡궁합이었어요.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어찌나 부럽던지요.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술을 과하게 먹고, 명자 씨를 때리고 큰소리를 지르는 날은 참 힘들었어요.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명자 씨는 바깥으로 나가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죠. 학교에서 돌아오면 명자 씨는 늘 보이지 않았어요.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어둑해질 때까지 동네를 몇 바퀴고 도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 가슴에 허전함이 쌓이고, 그럴수록 명자 씨가 미워졌어요.
한데 그렇게 아버지랑 푸닥거리가 있고 나면 명자 씨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난 떠나겠다"는 말이 무서워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했네요. 난 엄마가 필요했거든요. 외롭고 혼란스러운 날들이었죠.
사춘기가 되면서 명자 씨를 무시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마음 깊이 사과할게요. 당신이 글씨도 잘 못 쓰고, 공부하는 내용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마음으로 비아냥댔던 거 미안해요. 철없이 헛똑똑이 노릇했던 막내 딸내미는 부부 사이가 뭔지도 몰랐죠. 푸닥거리하면서 왜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이해는커녕 당신의 삶을 늘 무시하기 일쑤였어요.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하고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사 먹으러 간 적도 있어요. 늘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명자 씨가 싫었어요. 입버릇처럼 말하던 "네 엄마 똑 닮아서 못생기고 고집통머리가 세다"라고 하는 말은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그렇게도 미워하고, 무시하고, 섭섭한 줄만 알았는데 20년을 넘게 함께 살며 명자 씨 음식 맛에 길들여진 나는 스무 살 넘어 친엄마를 만나 정을 섞을 수가 없었어요. 입맛이며 살림살이며 너무나 다른 두 엄마를 만나는 게 어찌나 혼돈스럽고 어렵던지, 20대의 내 방황은 거기서 비롯되었죠.
결핍,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모르는 두 엄마에게서 나는 그저 사랑을 받고 싶었어요. 명자 씨의 가슴속이 늘 춥고 가난했고,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구나 하고 알게 된 건 시간이 오래 흐른 후였어요. 그리고 당신이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는 것도 당신이 병원에 누워 있게 되면서 비로소 깨달았죠. 미움도 원망도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해 준 명자 씨, 고마워요.
8년 전 정민이 오빠가 갑작스레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제 어린 시절과는 거꾸로 명자 씨 내외가 정읍으로 귀향을 했죠. 그리고 어느 날, 전셋집을 얻어 혼자 사는 딸네 집에 왔다가 며칠 편히 쉬다 가려는데 우연히 마주친 주인집 아저씨가 명자 씨보고 누구냐고 물어 "민희 엄마예요."라고 하니까 아저씨가 엄마 얼굴이 아니라고 해서 당황했던 날 기억하나요?
친엄마랑 연락하는 거 이야기해 주지 그랬냐고 크게 섭섭해했던 당신. 그때는 친엄마랑 명자 씨 사이에서 여전히 혼돈스러워 그랬어요. 그래도 그렇게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때 처음으로 명자 씨도 살아온 이야기를 꺼냈죠. 자식이 셋이 있다고, 남편이 바람나서 같이 못 살고 나왔다고. 그 삶이 서글퍼서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혼자 방에 앉아 한참 울었어요. 처음으로 당신을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죠.
이태 전 여름, 큰 외삼촌 49제에 참석하러 올라온 길에 나를 보고 가겠다고 전화로 들려준 목소리가 명자 씨의 마지막 목소리였어요. 다음날 외숙모에게 걸려온 전화. "엄마가 죽을지 모른다. 의식을 잃고 뇌출혈로 쓰러졌다." 명자 씨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기 위해서는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서울에서 인천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의서에 사인을 할 때까지도 몰랐어요. 명자 씨와 꼭 닮은 남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명자 씨의 막내아들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잘생긴 오빠가 눈앞에 있더라고요. 이렇게 잘생긴 자식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해요?
정민이 오빠가 스물아홉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명자 씨가 너무나 슬퍼해서 늘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오빠 기일이었네요. 찾아 챙기지 않으면 이렇게 잊어버리기 일쑤예요. 명자 씨는 늘 기억했는데 말이죠. 내 것밖에 모르고 남 챙길 줄 모르는 막내딸 '꼼지'는 오늘도 깜박했네요. 오빠 생일은 애쓰지 않아도 기억이 나는데, 8년이 지나도 기일은 제대로 못 챙기겠어요. 그런 내가 명자 씨 가고 나면 명자 씨 기일이나 잘 챙길지 모르겠네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죠? 명자 씨는 먹을 복이 있다고 했으니까요. 편지를 쓰다 보니 정민이 오빠도 생각할 수 있었네요. 고마워요 명자 씨.
명자 씨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고 곁에서 간병하는 아버지를 보니 두 사람이 얼마나 애틋하게 살아왔는지 새삼 알게 되었어요. 한동안 명자 씨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 눈물이 났는데 얼마 전 꿈에 명자 씨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 눈물이 났는데 얼마 전 꿈에 명자 씨 목소리를 들었어요.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르는 소리, 아직도 생생해요. 노래를 잘하는 여자와 춤을 덩실덩실 추는 남자, 두 사람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병원 생활 고달프겠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내는 모습이 내겐 좋아 보여요. 일흔의 나이지만 여전히 순수하고 유머를 간직한 아버지, 아버지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서로의 상처를 지켜보고 안아주고 30년을 함께 한 두 분 모습이 이제야 보이네요. 나도 그런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명자 씨도 그러길 바라죠? 입버릇처럼 손주 안아보고 싶다고 하던 소원 들어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벌써 새벽이 깊었어요. 종일 몸이 굳고 힘들었는데, 실컷 울고 나니 개운하네요. 학창 시절 벼락치기 공부하느라 늦게까지 안 자면 불 끄고 자라던 명자 씨의 음성이 떠오르네요. 명자 씨는 제게 늘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요. 괜스레 굳어 있으면 풀어주는. 당신이 있어 잘 클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난해 사업을 시작해 그토록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신 덕분이에요. 명자 씨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제가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일뿐었거든요. 당장이라도 의식이 돌아와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아 희망을 놓지 못했던 시간들, 하지만 세상에는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요. 병실에서 간병했던 아버지도 그런 순리를 배우는 시간이었겠죠? 두 분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지금 이 시간이 주어져 다행이에요.
참 어렵게 느껴지던 편지였어요. 이 편지를 쓰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눈을 부릅뜨느라 한참이 걸렸어요. 이제 마치려고 해요. 부디 마음 편히 놓고 푹 쉬세요. 여행하는 거 좋아하셨잖아요? 이제 명자 씨가 아주 먼 여행 해도 '가지 마라'라고 붙잡지 않을게요.
명자 씨를 통해 강인한 생명 에너지를 만나요. 그리고 한 순간도 삶을 허투루 살 수 없구나 정신이 들어요. 긴 병원 생활 힘들 텐데 잘 견디는 명자 씨가 존경스러워요. 마음 여린 가족들, 마음 준비시키느라 애쓰나 싶기도 하고요. 시간이 이만큼 지나야 간신히 준비가 되니까요. 고마워요.
이렇게 이름을 부르니까 어때요 엄마? 저는 왠지 친숙하고 좋은데요.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내 마음 안에 있는 엄마의 방을 구석구석 만나본 것 같아요. 여전히 정갈한 방 안, 나도 그렇게 하루하루 한 생 한 생 정성껏 살게요. 지금 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엄마의 마음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2013년 7월 <사랑을 말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