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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Feb 10. 2022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

저 아픔들마저 희미하게 사라져가길

작년 겨울이었다. 아빠와 호스피스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장례식을 치른 후 회사에 돌아왔을 때... 대부분은 괜찮고, 아주 가끔 뜬금없이 불쑥 올라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해 툭툭 쓱- 닦아 버리곤 했던 날들. 


그 즈음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회장님이 밥을 같이 먹자고 했던 날. 당시 만 90세, PR회사가 거의 전무하던 1980년대,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우리나라에 1세대 PR회사를 세운 분. 90이라는 숫자가 무색해질 만큼 정정해서 매일 회사를 나왔으며, 여전히 젊은 시절의 총기를 잃지 않고, 커렁커렁한 목소리로 미래지향적인 말씀을 하시던 분.


그 일 년 전의 식사에서 내가 아직도 기억을 하는 건, 내 손등을 쓰다듬던 따뜻한 손길과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에 대한 담백한 위로였다. 이미 누군가를 떠나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제 막 이별을 고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진심어린 제스처랄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함께 읊조려 주는 나지막한 위로랄까. 이제는 아주 먼 일인 듯 어렴풋해져서 그 날의 대화 전체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빠의 마지막 시간과 순간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음에 숨통이 틔이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회사를 그만뒀고, 회장님과는 한 번의 식사와 세네 번의 차례의 짧은 대화가 있었다. 그 대화들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PR 가치에 대한 확신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마지막 임무를 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했던 것이 두 달 전, 많이 쇠약해진 몸으로 잘 걷지 못하실 때도 역시 대화는 비슷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어떻냐는 물음와 함께, 본인의 남은 생에 하고 싶은 목표를 얘기하셨다. 

PR은 사회의 공익과 선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나에게 조금의 삶이 허락된다면,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제 해야 할 일들을 하고 가고 싶어. 


그리고 어제는 회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우리는 모두 매일 조금씩 각자의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는 와중이고, 그 사라짐의 와중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인생의 의미일까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의 말, 나의 행동... 몸이 사라져도, 남아있는 사람과 사회에 아주 작은 나비 효과라도 줄 수 있는 것들을 말이다. 


노래 하나를 틀면서, 편안히 영면하시길 빌어본다. 

한 때 나를 사랑했던 것들과
한 때 나를 지켜주던 눈빛과
한 때 나를 덥혀주던 온기와
한 때 나를 보살피던 그 집이
사라져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리들의
저 아픔들마저 희미하게 사라져가길
- 사라져가는 것들, 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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