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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May 10. 2023

우리 이제 조금만 무례해져 볼까?

대체 반말이 뭐라고

"안 할래요. 전 유교걸이라서 못한다고요!"


전 직장에서 같은 팀으로 일했던 후배들과 함께 캠핑을 하던 날, 야자 타임을 하자는 나의 제안에 소은이 딱 잘라 말했다. 같이 있던 다른 후배들도 "저도 못할 것 같아요" 라거나, "그걸 꼭 해야 할까요?", "팀장님은 어차피 저희에게 다 반말하는데, 저희만 불리한 거 아닌가요?"라고 말을 보탰다.


반말이 대체 뭐라고... 우리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건,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대리님", "과장님", "팀장님"으로 호칭했고, 친절한 존댓말로 상냥하게 대화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90년대 생으로 나이대도 비슷했기에, 야자타임을 잠깐 하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일인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야자타임은 글렀구나 생각할 무렵, 지민(a.k.a. 바른 청년)이 "팀장님이 하고 싶어 하는데, 한 번 해 볼까요?"라고 했다. 팀장님하고 싶은 이유가 있지 않겠냐면서. (사실 난.. 큰 의미 그런 거 없긴 했는데 ㅋㅋㅋ) 이때다 싶어, "그럼 우리 벌금도 내는 거다?!"라고 압박하며, 그렇게 나만 마냥 신난, 예상치 못한 1박 2일의 야자 타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매번 반말을 써오던, 나조차도 몸이 움찔했다. 일을 매개로 회사에서 만났고, 짧으면 2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 서로 존댓말을 쌓아온 사이였다. 이렇게 손이 닿을 듯 말 듯 이미 굳어진 우리의 간격에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반말은, 불쑥 손을 잡게 된 것 마냥 꽤나 어색한 일이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벽을 허무는 건 처음 한 번이 힘들 뿐이다. 한번 반말을 시작하자, 우린 생각보다 잘 해나갔다. 반말을 하면서 점심으로 가벼운 메밀면을 만들어 먹고, 저녁으로 고기를 굽고, 술자리 게임을 하면서 밤이 깊었다. 다음 날이 되면 존댓말로 리셋되지 않을까 했지만, 반말은 여전히 건재했다. 반말이 뭐 별거라고.


존댓말을 한다고 예의 바른 것도 아니고, 반말을 한다고 무례한 것도 아닐 거다. 내가 예전 팀원들과 야자타임을 하고 싶었던 건, 우리에게 쌓인 시간과 신뢰에 비례해 불편해지고 있던 깍듯한 예의 바름이었다. 카톡 하나가 와도 너무나 정중한 인사로 시작하고, 대화를 끝내려면 예의 바른 마무리가 꼭 붙어오는... 적어도 나는 그런 불필요하고 불편한 장신구들이 치렁치렁 붙어있는 듯한 무게감이 싫었다.


캠핑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 유교걸을 논하던 소은은 안 그래도 직급으로 서로를 칭하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고 했고, 막내 재은은 여전히 존댓말이 제일 편하다며, 존댓말이 거리감을 주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1박 2일 토탈 반말하기 일등으로 올라섰던 예훤은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 불편해서 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고,  지민은 새로운 시도로는 좋았다며, (한 번 했으니) 앞으로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은주는 침묵해서 모르겠지만, 아마 짐작컨대 그녀에게 가장 힘든 챌린지였을 거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친구 같은 선후배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일단 (나를 빼고, 이건 나를 안 껴줘서 ㅠㅠ) 그대들에게는 그런지도 모르겠다. 직급으로의 호칭이나, 한 방향으로 흐르는 반말은 알게 모르게 사적인 공간에서도 미묘한 권력과 거리를 만들기 마련이니까.



캠핑을 다녀온 지 2주가 지났고, 단톡방이 울렸다.

어떤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배들이 여전히 존댓말과 반말, 그 어중간한 사이를 건너고 있었다.


아우, 귀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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