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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May 03. 2023

행복하지 않다는 내게, 의미가 중요하다고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말하는 것들

"의미가 중요해요. 저는 행복이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제 몫일 테고요. 민희 님에게 행복보다는 그 의미를 드리고 싶어요. 일의 의미라 하면 세 가지로 나눠서 얘기할 수 있을 텐데요... 첫 번째는...(중략)"


전에 다니던 스타트업의 입사 초기, 회사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나의 징징거림에 대표가 말했다. 건조하게 말하는 대표의 말엔 확신이 차 있었지만, 정서적 공감 없이 돌직구로 날아든 철학적인 말에 나는 한숨부터 나왔더랬다. 내 기억 속 그때의 나는 꽤나 방황했고, 이미 대표와 고민을 한 번 나눴던지라 다짜고짜 행복이 중요하지 않다며 '의미'만을 말하고 있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면서 오래전 이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이 책의 서문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성공과 행복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며, 오히려 이것들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라고 말한다. 로고 테라피 세계 대회에서 발표했다는 책의 3부 내용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 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의미'를 찾으며 살다 보면(=일하다 보면) '행복'이란 것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일 뿐, 그래서 중요한 건 '삶의 의미'라고 말하는 책.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다시금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이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이자 정신과 의사였고,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면서는 한때는 '119번' '104번'이라는 번호로 존재했다. 수용소에서 손가락의 작은 까딱거림 하나로 생사의 운명이 즉결 심판되는 순간을 지나오기도 했고,  좁고 더러운 숙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포개 자는 가운데 극한 굶주림이 일상인, 게다가 '카포'라 불린 감시자들에게 맞지 않기 위해 죽도록 일해야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함께 잇었던 사람들에 대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그렇다고 참혹하고 악랄했던 시기를 견디며 결국은 승리한 영웅의 서사를 생각했다면 오산. 수용소의 경험을 담담하게 관찰하듯 보여주면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인생의 시련과 어려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서 설명해 준다. 이런 통찰은 저자가 창시했다는 '로고테라피'로도 이어지기에, 이 정신요법이 탄생한 그 뿌리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개개인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각자에게 삶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빅터프랭클은 로고 테라피에서 삶의 의미를 3가지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고 소개한다. 첫 번째는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두 번째는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세 번째는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가정함으로써.


이 책 전반을 흐르는 기조에서도 그랬지만, 나심 탈레브의 '안티 프래질'에서 얘기하는 포인트와 참 닮아있다. 나심 탈레브 역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생에서 작은 실수를 여러 차례 저지르되 여기서 오는 배움을 즐기고, 모든 시도와 경험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얘기한다. 고난과 시련 같은 외부의 충격에 더더더 강해지는 '안티 프래질' 개념도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산다는 거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과 통한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강제 수용소를 겪으면서 이 경험을 '로고 테라피'라는 학파를 창시하는 것으로 승화시켰으니, 그의 삶 자체가 안티프래질의 강력한 사례일 수도 있겠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지만, 행복과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의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시련과 고통을 대하는 '태도'라는 말에 대해서도 되짚어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어떤 환경이든 그 몫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말.


내 몫. 내 의미. 내가 찾아야 하는 내 숙제.


# # #


책 속의 문장들

"왜 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제공한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 이 말은 독일어로 쓴 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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