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게를 가늠이나마 할 수 있을까
내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도 순했다. 조용히 방긋 웃는 아이였고, 누가 뭐라 하든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내가 은근슬쩍 꼬드겨서 넘기는 집안일이나 심부름도 굳이 싸우려 들지 않았고, 무심히 내뱉는 가시 돋친 말들도 속으로 삼키며 평화를 지키곤 했다.
동생은 결혼을 하고 3년 터울로 아들 둘을 낳았다. 엄마를 닮아 섬세하고 다정한 아이들이었다. 첫째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애교가 많았다. 둘째는 생글생글 잘 웃곤 했으나 발달이 느렸다. 소근육 발달이 느렸고 말도 잘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인지능력이었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둘째는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해 보이는 일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과 눈을 길게 맞추지 못했다. 말을 제대로 못 했고, 할 수 있는 말도 발음이 어눌했다. 산만했고, 소리를 질렀다. 가끔은 이상한 행동과 함께 혼잣말을 하곤 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 동생은 계속해 오던 일을 그만뒀다.
지난 주말, 11살 첫째가 내 차 안에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자기 반에서 일어난 믿기지 않는 일들, 최근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녀온 여행 이야기, 본인의 생일에 받은 선물, 그리고 엄마와 동생 이야기.
“이모, 엄마가 울었어."
“응? 왜?”
“엄마가 동생 학부모 참여 수업에 갔었거든. 근데 동생이 계속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혼잣말 중얼거리고 소리 지르고 그랬대"
“엄마 속상했겠네”
“응. 그래서 엄마가 울었어. 그리고 친구들이 동생을 괴롭힌대. 막 모래를 던지고, 그래서..."
말하던 조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담담하게 되짚어 얘기를 꺼낼 때, 속으로 울렁이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첫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함께 먹먹해졌다. 우리의 힘으로 어찌 되지 않는 일들에 집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이럴 때 어떤 말인들 위로가 될까.
조카들을 데리고 엄마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도 같은 일을 얘기한다. 동생이 둘째 조카의 학부모 참여 수업에 갔는데, 많이 슬펐던 것 같다고. 자세한 일은 얘기하지 않아서 모르겠다면서, 말에 한숨이 섞인다.
"이제부터는 엄마한테도 말을 안 하겠대. 말을 해서 달라지는 게 없고 다들 속상할 뿐이라고. 걔가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 얼마나 눈총을 받았겠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카가 담담히 말하는 '엄마가 울었다'는 말이 소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둘째 조카를 바라보며 "사랑해"라고 말했다. "안 사랑해"라고 응답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는 이 아이에게 이모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있는 그대로의 조카를 더 사랑해 주는 일 밖엔.
누가 뭐라 하든 너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