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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Aug 06.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7일 / 브레사노네 일곱째 날 / 23. 06. 14

Sass de Putia(Peitlerkofel) loop trail

오늘은 원래는 다른 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버스를 어제 스틱을 두고 온 카페로 가서 스틱을 찾은 후 다시 한 시간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Zannes로 가서 Tullen Summit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스틱을 찾아가지고 나와 330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침 Passo delle Erbe라고 쓰인 미니버스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어? 여긴 경치가 끝내준다고는 하는데 버스를 갈아타고까지 가려니 귀찮기도 하고 멀기도 해서 제쳐놨던 곳인데.. 여기로 갈까?

망설이는데 버스도 망설이며 잠시 서있었다.

기사아저씨도 날 계속 쳐다보기에 에라 모르겠다.. 그냥 탔다.


그러고 보니 버스시스템이 정말 퍼펙트하다.

Paese에서 내가 타고 온 330번 버스에서 내리면 5분 후  Passo delle Erbe로 가는 339번 버스로 바로 갈아타고 갈 수가 있게 되어있는 걸 보니..


길이 좁고 꼬불꼬불해서 339번 버스는 330번 버스와는 달리 작은 미니 승합차라 좌석이 열 개 밖에 없는데 내가 열한 번째.  그냥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가다가 중간에 자리가 나서 앉았다.

40여분을 달려 Passo delle Erbe에 내려 시계반대방향으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평탄하던 길은 중간에 가파른 오르막을 계속 올라 1시간 반 만에 Forcella de Pütia에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는 Utia Vaciara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표지판 방향을 헷갈려서 Putia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말았다. 엄청나게 가파른 길을 1시간가량 올라갔는데 표지판은 눈 한가운데 있어 가서 볼 수가 없고 위를 올려다보니 기암절벽 위로 한 커플이 올라가고 있다. 헐..


아무래도 잘 못 온 것 같아 다시 내려가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  여기가 인간계 맞아? 천상계 아냐? 싶을 만큼 기가 막힌 경치가 계속 펼쳐졌다.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댔으나 사진으로는 도저히 이 경치를 담아낼 수가 없다.



들판엔 어디나 야생화 천국.  이때까지만 해도 밥도 제대로 못먹고 미친듯이 뛰어야 버스를 탈 수 있다는걸 모르고 유유자적...

내려가는 내내 그 기가 막힌 경치와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에 정신이 팔려 거의 넋이 나간 듯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미 거의  2시간여를 트레일에서 벗어나 헤맸으므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있었다는 것도 생각 못했다.


점심도 못 먹어 배가 고팠지만 뭘 먹을 생각도 안 났다. 그냥 이 아름다운 곳을 마냥 걸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차... 전혀 뜻밖에 아주 작은 산장이 나타났다. 이곳에 산장이 있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옆 테이블의 남자에게 버스 타는 곳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1시간 30분이라고. 마지막 버스가 5시 14분이고 그때 시각이 3시 38분.. 헐..

음식을 취소해야 하나 싶어 주방으로 뛰어가서 물으니 1시간 10분이면 간다면서 음식은 거의 다 됐다고 한다. 어느 말을 믿어야 하나..


내 옆테이블의 남자들은 자기들은 걸음이 느려서 그렇지만 나 정도라면 그만큼 안 걸릴 거라기에

당신들은 버스 안 타나요?  했더니 자기들은 차를 가지고 왔단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도착해서 혹시 징징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차를 태워주겠다며

농담을 했다.


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에서 경치를 즐길 틈도 없이 일단 나온 리소토를 정신없이 퍼먹고는 미친 듯이 걸었다. 거의 1시간 20분을 뛰다시피 걸어 겨우 5분 전에 도착해서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단 1분도 지체 없이 정각에 출발했다.  1분이라도 늦었음 어쩔 뻔했나.. 아마도 히치하이킹을 하든지 해서 갈 수밖에 없었을 듯..


갈 때 와는 반대로 Paese에 내리니 5분 후 내가 탈 330번 버스가 왔다. 버스에 털썩 주저앉으니 "오늘도 무사히! " 가 절로 나온다.


길치의 고단한 하루여~~

오늘 33,000보.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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