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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Aug 09.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돌로미테 12일 / 오르티세이 다섯째 날 / 23.06.19

오늘은 산타 크리스티나 Santa Cristina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Col Raiser에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가 다시 체어리프트를 타고 세체다로 올라갔다. 오르티세이에서 세체다로 바로 가는 케이블카가 점검도중 일어난 인명사고로 거의 한 달째 운행이  중지된 상태로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어둡고 스산하다. 정상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방에서 우리말이 들린다.

혼자 다니니 주로 풍경사진만 좀 찍을 뿐인 나도 사람들 덕에 사진을 찍었다.


구름과 안개로 풍경이 잘 보이지도 않으니 오래 있고 싶지도 않아서 일단 걷자 싶어 한 시간쯤 걸어 Pieralingia로 가니...  

와~ 돌로미테 야유회 수준이라니~~ 이 엄청난 경치에서..

나도 판초 깔고 초원에 한참을 드러누워 있었다.

어디서 이런 호사를 누리랴...  

누워있는데도 저 멀리서 한국말만 들린다.



Pieralingia는 야유회 같은 모임을 할 만큼 대중적인 곳인가 보다. 작은 산장에선 음식도 팔고, 사람들이 근처에서 많이들 놀고 있다. Col Raiser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서 조금만 걸으면 올 수 있는 데다 탁 트인 아름다운 경치에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으니 야유회 장소로는 정말 좋겠다.


여기서 Rifugio Firenze까지는 30분.

가는 길에 마산에서 온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아줌마를 만나 산장까지 같이 걸었다. 이삼천 명이 속해있는 여행밴드에서 함께 왔다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함께 먹고 자며  여행 다니는 건 나로서는 상상을 못 한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게 바로 단체여행. 더구나 친구들끼리도 아니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랑 보름씩이나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아는 사람들 아니어도 패키지나 단체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아마 나도 밀포드 트래킹, 뚜르 드 몽블랑, 남미, 아프리카 까지도 벌써 갔을 거다.

근데 난 그게 제일 힘들다.  


패키지는 딱 한 번.

부탄 갈 때 친구랑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부탄은 개별여행이 안되기 때문에 단체로 밖에는 갈 수가 없었고,  다행히 내가 아는 여행작가님과 공정여행사의 대표님이 주관해서 간 여행이라  일정도 여유롭고, 프로그램도 좋고, 여행 전 오리엔테이션도 하고, 미리 추천한 책도 읽어갔고, 함께 한 사람들까지 정말 다~ 좋았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 그리고 몇몇 장소는 기억이 나지만 내가 모든 걸 계획해서 떠난 여행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서툴러도, 실수해도, 버벅거리다 넘어져도 혼자 해야 온전히 내 마음에, 내 온몸에 오롯이 기억되는 것 같고, 그래야 비로소 내 여행으로 남는다.


산장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데 아까 그분이 일행들과 함께 있다가는 내게 오시더니  슬그머니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나중에 혼자 또 여행할 때 자기한테 연락 좀 해서 데리고 가 달라는 순진하고 황당한 부탁을 한다.

70년대 건설붐이 한창이던 시절 중동에 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 만큼 씩씩하고 사회생활도 많이 하신 분이 하는 부탁치고는 귀엽다..ㅎ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산타 크리스티나에서 4시 16분 버스를 탔더니 사람도 없고 좋다.

어제는 그렇게나 사람이 많더니... 일찍 나와 일찍 들어가야겠다. 성수기엔 버스간격이 좀 촘촘해질까?   브레사노네에서 다닐 때 비해 여긴 확실히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붐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닌데도 이러면 7, 8월 성수기엔 정말 엄청날 듯.


오늘은 내내 무릎보호대를 했음에도 특히나 내리막에선 오른쪽 무릎이 아파 절뚝거렸다. 엊그제 그 가파른 암벽을 4시간 동안 기를 쓰고 오르내렸으니..

그땐 왜 무릎보호대를 할 생각을 못했을까.. 배낭 안에 항상 가지고 다녔으면서.. 어제까지도 괜찮더니 오늘 아침부터 시큰거리고 아프다.

걸어올라 가려다 무릎 생각해서 그냥 리프트를 탔지만,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올 때가 더 아프다.

무릎만 괜찮았으면 Col Raiser부터 걸어서 세체다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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