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산타 크리스티나 Santa Cristina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Col Raiser에 내려서20분 정도 걸어가 다시 체어리프트를 타고 세체다로 올라갔다.오르티세이에서 세체다로 바로 가는 케이블카가 점검도중 일어난 인명사고로 거의 한 달째 운행이 중지된 상태로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어둡고 스산하다.정상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방에서 우리말이 들린다.
혼자 다니니 주로 풍경사진만 좀 찍을 뿐인 나도 사람들 덕에 사진을 찍었다.
구름과 안개로 풍경이 잘 보이지도 않으니 오래 있고 싶지도 않아서 일단 걷자 싶어 한 시간쯤 걸어 Pieralingia로 가니...
와~ 돌로미테 야유회 수준이라니~~ 이 엄청난 경치에서..
나도 판초 깔고 초원에 한참을 드러누워 있었다.
어디서 이런 호사를 누리랴...
누워있는데도 저 멀리서 한국말만 들린다.
Pieralingia는 야유회 같은 모임을 할 만큼 대중적인 곳인가 보다. 작은 산장에선 음식도 팔고, 사람들이 근처에서 많이들 놀고 있다. Col Raiser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서 조금만 걸으면 올 수 있는 데다탁 트인 아름다운 경치에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으니 야유회 장소로는 정말 좋겠다.
여기서 Rifugio Firenze까지는 30분.
가는 길에 마산에서 온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아줌마를 만나 산장까지 같이 걸었다.이삼천 명이 속해있는 여행밴드에서 함께 왔다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함께 먹고 자며 여행 다니는 건 나로서는 상상을 못 한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게 바로 단체여행.더구나 친구들끼리도 아니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랑 보름씩이나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아는 사람들 아니어도 패키지나 단체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아마 나도 밀포드 트래킹, 뚜르 드 몽블랑, 남미, 아프리카 까지도 벌써 갔을 거다.
근데 난 그게 제일 힘들다.
패키지는 딱 한 번.
부탄 갈 때 친구랑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부탄은 개별여행이 안되기 때문에 단체로 밖에는 갈 수가 없었고, 다행히 내가 아는 여행작가님과 공정여행사의 대표님이 주관해서 간 여행이라 일정도 여유롭고, 프로그램도 좋고, 여행 전 오리엔테이션도 하고, 미리 추천한 책도 읽어갔고,함께 한 사람들까지 정말 다~ 좋았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 그리고 몇몇 장소는 기억이 나지만내가 모든 걸 계획해서 떠난 여행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서툴러도, 실수해도, 버벅거리다 넘어져도 혼자 해야 온전히 내 마음에, 내 온몸에 오롯이 기억되는 것 같고, 그래야 비로소 내 여행으로 남는다.
산장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데 아까 그분이 일행들과 함께 있다가는 내게 오시더니 슬그머니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나중에 혼자 또 여행할 때 자기한테 연락 좀 해서 데리고 가 달라는 순진하고 황당한 부탁을 한다.
70년대 건설붐이 한창이던 시절 중동에 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 만큼 씩씩하고 사회생활도많이 하신 분이 하는 부탁치고는 귀엽다..ㅎ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산타 크리스티나에서 4시 16분 버스를 탔더니 사람도 없고 좋다.
어제는 그렇게나 사람이 많더니... 일찍 나와 일찍 들어가야겠다.성수기엔 버스간격이 좀 촘촘해질까? 브레사노네에서 다닐 때 비해 여긴 확실히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붐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닌데도 이러면 7, 8월 성수기엔 정말 엄청날 듯.
오늘은 내내 무릎보호대를 했음에도 특히나 내리막에선 오른쪽 무릎이 아파 절뚝거렸다. 엊그제 그 가파른 암벽을 4시간 동안 기를 쓰고 오르내렸으니..
그땐 왜 무릎보호대를 할 생각을 못했을까.. 배낭 안에 항상 가지고 다녔으면서..어제까지도 괜찮더니 오늘 아침부터 시큰거리고 아프다.
걸어올라 가려다 무릎 생각해서 그냥 리프트를 탔지만,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올 때가 더 아프다.
무릎만 괜찮았으면 Col Raiser부터 걸어서 세체다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