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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Sep 08. 2022

미끄러지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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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말들

백승주 지음, 대원씨아이(주)


연서가 먼저 읽어보고는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추천을 해주었다. 

이 책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지금껏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 역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에 동의해 왔다. 언어가 생각을 만드는 재료이며 이 재료를 통해서만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주장 말이다. 김치가 없으면 김치찌개를 끓일 수 없듯 언어가 없으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며 그 생각을 조금 더 확실히 굳히게 되었다. 특히 이주여성들을 위한 국어 교재의 예문을 보고 나니 그것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예문은 집안에서 양말 따위를 찾는 것 그리고 시장에서 요리 재료를 사는 것 들이었다.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집 안에서 특히 주방에서 살아가는 주방 구성원이 더 어울릴법한 그런 예시 말이다. 


그들이 주방에 있고 싶어 할지 회사에 있고 싶어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 가는 교재라면 최소한 그런 것들을 다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과 사회 모든 것을 알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그것밖에 알려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그 사투리를 쓰고 있다. 구사하는 단어는 대부분 표준어에 준하지만 말투는 아직 그 특유의 높낮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글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어릴 적부터 읽었던 모든 책에서 사투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사투리는 소리로만 존재하는 구전되는 존재였으며 적히고 읽히는 것은 모두 표준말이었다. 


이러한 표준은 비표준을 만들었으며 사투리는 비표준이자 사라져야 할 그런 것들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표준어는 무엇일까. 표준어를 통해 국가 구성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데 왜 세계 표준어는 없는 걸까? 영어를 번역하듯 지방의 말을 번역하면 안 되는 걸까? 우리는 꼭 같은 말을 써야 할까? 서울과 대구의 삶이 다른데 왜 말은 같아야 할까? 



와 같은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되는 책이다. 과거 품었던 의문을 더 증폭시켜주기도 하고 해답을 주기도 하는 그런 책이라 누구든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해본다.


다만 이 책은 저자가 발표했던 글이나 칼럼들을 엮어서 낸 책이기 때문에 조금 두서없어 보이긴 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조금 혼란스럽긴 했다. 하지만 그런 혼란쯤은 극복해낼 수 있도록 잘 미끄러지게 말을 엮어 두어 무리 없이 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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