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처갓집'이란 곳은 불편하고 어려우며, 쉽게 생각하기 힘든 곳으로 인식된다.
처갓집은 아내가 살던 본가를 뜻하며 그곳에는 장인과 장모 그리고 아내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일부 남자들은 왜 처갓집이란 말에 멋쩍은 미소만 지을까?
우리 주변, 아니 나의 지인들만 해도 1년에 처갓집을 한 번 이상 다녀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몇 년에 한 번 정도 처갓집에 다녀오는데 그것도 당일치기가 가장 많았고 1박을 하고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유를 물으면 '불편하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빨리 쉬고 싶어서'가 두 번째 이유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토록 불편한 집에 살던 여자와 결혼은 왜 했으며, 자기의 본가에 여자는 왜 데리고 가는 것인가?
혹시 나와 살고 있는 여자, 아내도 나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을 불편해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나와 사는 여자, 집사랑의 처갓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장인장모님 짱!"
내가 집사람과 결혼하기 전, 처음 찾은 예비 처갓집은 원래의 처갓집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충남 홍성군에서 사시던 장인장모님은 내가 사는 도시에도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홍성군에 있는 원래의 집이 아닌 도심의 아파트였다는 얘기다.
처갓집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떤 분들인지 전혀 몰랐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처갓집에 대한 정보를 귀로, 눈으로 수집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집사람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다.
홍성이라 하면... 몇 해전 봄쯤이 떠오른다.
Q1. 홍성군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있으신가 봐요?
굉장히 큰 추억은 아니고요, 홍성에 가면 복권 대박집이 하나 있어요.
집사람을 만나기 몇 년 전쯤, 친구랑 그곳을 지나가다가 우연한 기회에 대박집에 들러 복권을 샀거든요.
당시 전국에서 1등이 제일 많이 나온 집이라고 해서 복권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줄도 엄청 길게 서있었죠.
아무튼 복권을 사고 복권번호를 발표하는 날까지 엉뚱한 기대심으로 가슴이 설레더군요.
혹시 내가 이번 주 1등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설레발을 치던 중 1등 발표가 나왔죠.
아쉽게 저와 친구는 둘 다 '꽝'이었어요.
Q2. 그냥 단순한 해프닝 같은데, 왜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계시죠?
처갓집을 갔는데 글쎄, 처가가 바로 그 집 뒤더라고요. 바로 복권 대박집 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샀던 복권이 꽝이 아니라 몇 년 뒤에 1등이 되어 돌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그때 저랑 같이 복권을 산 친구도 홍성 여자를 만나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것 보면, 우리가 그때 산 복권이 조금 늦게 당첨된 기분이더군요.
우리 장모님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있듯이 장모님은 나를 참 많이 아껴주시고 챙겨주신다.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아마도...?)은 처갓집을 찾는 것 같은데, 갈 때마다 상다리가 부러진다.
이래서 장모님, 장모님 하는구나 싶었다.
여담이지만, 집사람이 차려주는 밥상과는 퀄리티 자체가 많이 다른...(응? 나의 신변보호를 위해 이쯤 씀)
장모님은 일찍이 사회생활을 하셔서 살림에는 젬뱅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다른 사람들이 장모님 음식 별로라고 말해도 내가 맛있고 나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난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음식이 딱~ 좋고 너무 좋으며 나에게 최고의 음식이다.
그리고 장모님이 어디 어디에 있는 사회복지단체를 아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왜 물어보시는지 되물으면 그곳에서 판매되는 물품을 구입하신다고 한다.
"장모님, 취지는 좋은데 잘못 사시면 사기를 당하실 수 있으니 잘 알아보셔야 해요."
"내가 안 사주면 그곳 장애인들이 힘들데."
장애인 생산물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장애인을 지원할 목적으로 판매되는 물품들을 몇 년째 구입하고 계신다.
물론 본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그곳의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서란다.
갑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갑자기의 영향으로 하시는 선행은 아니었다.
그만큼 마음이 따뜻하시고 정(情)으로 세상을 사는 아주 착하신 분이시다.

"장모님, 알라뷰~"
Q3. 백년손님이라고 하는 사위 입장에서 장모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누구나 살아온 가정의 환경이 똑같을 수는 없죠.
비슷한 부분이야 있겠지만 제가 성장한 집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요.
일단 종교적으로 불교집안과 기독교 집안이 만났으니 특색이 다른 건 당연하겠죠.
내유외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시는 성격, 자식사랑이 뜨겁고 밝으신 모습이기에 누구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 같아요.
Q4. 장모님이 상당히 아빠를 챙기시는데, 장모님에게 전할 말씀이 있나요?
장모님이 예전 뇌암을 앓으셨던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 면역력이라든가 기초체력 같은 부분이 많이 취약하시거든요.
하지만 운동을 참 좋아하셔서 홍성군에 있는 둘레길을 엄청 많이, 오래 걸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식사는 정말 소량으로 드시고...
장모님, 맏사위가 드리는 청언이니 꼭 들어주세요.
우리 장모님은 식사량이 너무 적으신대 지금 드시는 거에 두배 이상은 드셨으면 좋겠고요, 우리 장모님은 고기를 너무 싫어하시는데 고기 많이 드셔야 아프셔도 버티실 수 있어요.
우리 장모님은 운동을 참 좋아라 하시는데,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무리하시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으니 운동하실 때도 적당히 하셨음 하고요, 우리 장모님은 자식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으세요.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 걱정 안 하고 살겠습니까만은 저에게 시집온 집사람, 곧 있으면 애 아빠가 될 처남... 내 안에 자식이지만 이제 버젓이 결혼하고 독립했으니 자식에 대한 걱정 조금만 덜어 놓으세요.
늘 항상 건강하셔서 저희랑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장인어른 이야기다.
장인어른은 젊으셨을 때부터 지금 현재까지 소금 장사를 하신다.
예전에 한 번 장인어른의 소금창고에서 소금 포대를 날라본 경험이 있는데 간수가 덜 된 소금 포대는 포대에 적힌 무게 숫자보다 훨씬 무거웠고 젊은 나도 버거울 정도였다.
연세도 있으시고 건강도 조금씩 나빠지는 모습을 보자니, '이제 그만 하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매번 해본다.
돈 많은 사위였으면 좀 더 편안하게 노년을 보내시게 할 텐데, 그렇지 못해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이제 좀 쉬셔도 될 텐데..."
Q5. 혹시, 장인어른과 해보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전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빼고 저와 어머니, 장모님, 집사람과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로 놀러 갔던 적이 있었어요.
정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곳 많이 다녔는데 그때 든 생각이 이번에는 남자들만 뭉쳐서 여행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장인어른과 함께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은 너무 많지만, 밤낚시를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밤낚시라는 게 조용한 시간대에 서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이 참 많거든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장인어른과 단 둘이 무얼 해본 적이 없어요.
밤낚시 좋아요.
늘 그랬다.
"엄마, 큰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엄마, 갑자기가 이렇고 저렇고 해서..."
갑자기가 자신이 위급함을 느낄 때 헬로카봇을 부르듯, 나의 상처 딱쟁이를 뜯는 갑자기에게서 보호를 받고 싶을 때 내가 부르는 영웅처럼...
집사람이 위급할 땐 항상 집사람이 생각하는 영웅을 부른다.
망설임 없이 나타나셔서 집사람의 걱정을 덜어주시고 돌아가시는 그 영웅.
우리 장모님은 현재 우리 가족의 영웅이다.

"영웅이 사는 처갓집!"
우리 가족에게 처갓집은 집사람에게는 영웅이 사는 집이며, 나에게는 피곤하고 힘들 때 힐링이 될 수 있는 집이고, 아이들에게는 내리사랑을 맛볼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부족하지만, 맏사위인 나를 늘 응원해주고 아껴주시는 장인장모님이 보고 싶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