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처방받을 거야. 그렇게 알아.' 통보를 받았다

#42

by 복지학개론

일본과 싱가포르는 작업치료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요. 미국도 최근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에 ABA 치료가 포함됐고요.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하는 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죠. 이러면 민간기관의 치료도 정부에 보고서를 내야 하고 심사받게 돼 관리가 됩니다. 팀 협업도 이뤄지기 쉽죠. 이런 지원으로 부모들이 생업을 유지할 수 있어요. 또 외국을 보면 발달장애 연구가 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례가 계속 나와요.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비약물 치료’에 인색해요. 그래서 오히려 여러 치료가 민간에서 난무하게 되죠. 정부에서 이와 관련한 시범사업이든 추적조사든 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들은 치료와 교육을 통해 생활과 환경에 적응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나요. 그런데 이들을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하면 아이들이 힘든 행동을 더 하게 돼요. 일정한 규칙(단계별 행동)이 적용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할 수 있으면 문제행동이 잘 나타나지 않게 돼요. 아이의 뇌를 바꾸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바꾸고, 아이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해요.


- 지석연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 소장 한겨례21 인터뷰 내용 中(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7902.html)






새벽 4시경, 누군가 내 배 위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단꿈을 깨우고 있다.

누구겠는가. 갑자기다.

요 며칠, 잠깐이라도 운동을 시키자는 취지에서 일부로 걷게 했다.

몸이 피곤하면 잠이라도 깊게 들겠지라는 생각에서 마트를 가도 걸어서, 동네 걸을 때도 일부러 더 먼 거리로, 잠깐잠깐 걸어도 나름 힘든 자세(?)로 갑자기의 체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걷고 걸었더니,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았고 깊은 잠은 아니어도 새벽에 깨어나는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새벽에 눈을 뜬 갑자기는 언제나 그렇듯 잠든 나를 깨우며 새벽을 함께 맞이하잔다.

"잠 좀 자라. 이 녀석아..."

"우아아~"

이미 토끼눈이 된 채 나의 기상을 바라는 갑자기의 기대에 화답하듯 잠에서 깨어난 뒤 텔레비전을 켜본다.

깬 아이를 다시 재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해봤지. 별 짓을 다 해봤지.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나 스스로 그런 도전은 이제 포기했다.

나와 아이들은 거실에서 같이 잠을 자고 안방에서 혼자 잠자고 있던 집사람이 내가 켠 텔레비전 소리에 잠에서 깼는지 우리가 있는 거실로 걸어 나오며 말한다.

"또 깼어?"

"새삼스럽게."

"진짜 쟤 약 처방받아야 할까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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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처방이 좋은 게 아니라니까."



'발달장애,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순간들' 편에서 밝혔듯, 약은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집사람이 입에 달고 사는 약 처방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다.

아침이 밝았고 갑자기는 루틴처럼 자신의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갑자기에게 요즘 새롭게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삐리리~ 윙~"

에어컨을 의무적으로 작동시킨다.

창문이며 중문 등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지만 갑자기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방향에 앉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고 우리는 그런 갑자기에게 에어컨을 끄라고 말하면 통제받는 기분을 느껴서인지 사정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꼬집고, 할퀴고...

폭력적인 행동도 근래에 더욱 심해졌다.

정말 나의 사랑만으로는 갑자기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인가.

조금만 참고 조금만 기다리면, 갑자기도 아빠의 사랑을 느끼며 '도전적 행동'이라는 것을 덜하게 되지는 않을까.

집사람은 요즘 무척 예민해진 상태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갑자기의 요즘 행동 때문이다.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는 나에게 집사람이 통보하듯 얘기한다.

"갑자기, 8월에 병원 예약했어."

"병원? 왜?"

"약 처방받을 거야. 그렇게 알아."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반대하면 또 다툼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집안 분위기 냉랭한데 살얼음이 될까 봐, 그냥 내가 피했다.

새벽에 갑자기에게 테러당하고, 애들 학교 등교시키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예민해진 집사람 눈치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나.

새벽에 갑자기에게 화내고, 애들 학교 등교 준비시키고, 집안 살림하고, 퇴근한 내게 갑자기에게 시달렸던 일들을 한탄하며 한숨만 푹푹 쉬며 하루를 마감하는 집사람.

제일 큰 문제는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닌 매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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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힘들지 않아... 절대..."



갑자기를 위해 약 처방이 아닌 우리의 사랑이 먼저냐, 집사람이 겪고 있을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갑자기에게 약을 복용시켜야 하느냐...

난... 이것도 저것도 선택할 수 없는 기로에 서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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