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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고작 잠이라니,

아침편지

by 하민혜

모락모락, 텀블러에 김이 올라요. 옆에 난로는 붉은 오렌지 빛깔입니다. 겨울은 밤이 길어요. 창밖이 새까매 앉은 곳이 선명해요.


엄마가 틈틈이 글이나 영상을 보내셔요. 무심코 하나를 보았어요. 요점은 사람이 잠을 8시간만 자도 어지간한 병이 사라진다는 거였어요. 바쁜 현대인에겐 어림없지만 속는 셈 치고 몇 달 해보아도 좋겠어요. 앓는 병은 없지만, 심지어 알레르기 같은 류의 만성 질환도 사라진다고 해요.


고작 잠이라니, 생각하실까요. 의사 말엔 이 몸의 자정 작용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우리 몸 마음이 실은 웬만한 외부 치료 이상을 해내고 있다는 거예요. 매일 일어나 움직이고, 먹고 말하는 게 저는 신기해요. 몸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없이 겸손해지기도 해요. 나는 그냥 앉은 것 같은데 어떤 순간에도 이 몸은 쉬지 않아요.


우리가 현현하려는 AI나, 첨단 의학 기술이 결국 이 몸의 작용을 베끼려는 게 아닌가요.


오늘 아이들 방학식이에요. 할 일 몇 가지를 구석에 적었습니다. 3p 바인더를 배운 적이 있어요. 업무가 장황한 시기였어요. 어수선한 목록을 정리하기 좋았습니다. 허술한 성격이라 치밀한 바인더라면 안심이지요. 빽빽한 스케줄을 보는 게 어지럽지 않았어요.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면 하루가 다 갔으니까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어요.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바쁜 건지를 따질 겨를이 없어서요. 시간을 모두 쪼개 놓아서 마치 게임하듯 하루를 마스터하는 데 집중했어요.


어떤 경험이든 소중한 건 물론이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그때 저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허술한 성격은 여전한데 이젠 무심하고 엉성해요. 사람 습관이 있어서 계획은 세우지만 치밀하지 않아요. 다섯 이상을 넘기지 않아요. 해야 할 일 목록과 하고 싶은 일을 나누는 편입니다. 간결하고 단순해요.


적은 것은 백발백중이에요. 할 일 목록이 다섯이면 그 다섯은 오늘 우선순위가 됩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 적힐 때도 많아요. 10분이면 끝날 일이라도 넣어요. 덤벙거리는 사람이라 기록을 좋아해요.


언제고 지금의 삶이 옳아요. 게으른 요즘이면 이 몸은 회복하고 있는지 몰라요. 더욱이 마음의 상처는 드러나지 않아서요. 만일 자꾸 늘어진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 이 삶과 나의 몸 마음을 존중하고 믿어주면 좋겠어요.


한 주 시작이네요. 늘 정답을 살고 있는 그대라는 걸 잊지 마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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