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어느 봄날

문장공부

by 하민혜



- 때로는 십 년 세월을 한 줄 문장으로 압축하고 때로는 일 분 동안 감정의 요동을 한 페이지에 담을 수도 있다. 굵기가 다른 여러 개의 붓을 쓰는 화가처럼, 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기. 다 말하지 말고 잘 말하기가 관건이다.

(은유- 쓰기의 말들)






현실에서 고작 몇 초간 일어난 일에 불과할 테지만, 기억 속에서 그 일은 터무니없이 길게 늘어나 있다. 계단 난간 위에서 내려다본 놀이터는, 일곱 살 열은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풀을 짓이기며 엄마, 아빠 놀이를 했던 모래 무덤도 하늘 위를 걸어가듯 했던 그네도, 무엇보다 가슴을 두 방망이질하며 내리 앉히는 미끄럼틀이 그랬다. 바닥을 보진 않았다. 몸을 내던지면 미끄럼틀 위로 올라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미지 속 7살의 여자아이는 난간에 서서 한 세상 같은 놀이터를 바라본다. 1초, 2초, 앞을 내다보는 아이의 텅 빈 눈빛은 죽음 앞에 섰던 다른 날처럼 하염없이 멈춰 있다. 앞서 가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토끼눈을 뜨며 아이를 바라본다. 유치원 아이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여자 아이는 쿵 하고 떨어진다. 미끄럼틀은커녕 바닥에 그대로 내리 꽂혔다. 다행스럽게도 목적지를 향해 내던진 몸이라설지 힘이 들어간 다리부터 떨어졌다. 발바닥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지잉 울리는 뜨거운 전율을 기억한다. 선생님이 어깨를 잡고 이름을 부르는 때까지도 꼼짝 않고 그 떨림을 느끼며, 마치 머얼리서 나를 부르 듯한 그 목소리를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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