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에선 여성의 신체가 7년 주기, 남성은 8년 주기를 갖는다 말한다. 여성으로서 7의 배수가 되는 14살. 중 3에 나는 -생일이 빨라 학교를 일찍 들어갔으므로-이성에 대해 눈을 떴던 것을 기억한다. 계절에 따라 꽃망울이 피어나듯 자연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머물 줄 모르고 도무지 포기하지 않는 욕망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타고나길 밝은 성품은 많은 친구들을 데려와 엮어 주었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한 손에 넘치는 가슴은 이따금 남학생들의 욕망에 불을 질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즈음 나는 어렵게 구한 남학생의 증명사진을 베개 아래 숨겨 놓고 바라보다가, 차가운 바람 부는 아침엔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돌아선 적도 있다. 내게 다가오는 친구들에도 같은 모습을 보았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대하듯 하다 이내 돌아서는 그 마음들을.
열여덟 당시엔 누가 누굴 좋아한다던가, 몇 고백을 받았는가가 대단한 별 일이며 흥미진진한 소식이었다. 돌아보면 대부분 어린 치기에 멈추지 않고 거세게 올라붙는 욕망 그 자체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처음 관계를 가졌던 A는 한창 새벽 늦게까지 공부했던 고3부터 나의 20대를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A가 처음 옷을 벗기고 섹스를 시도하려 할 때 나는 왜 다리를 벌려야 하는지 모를 만큼 무지했다. 가지각색으로 애씀에도 결국 그날 우리는 실패하고 말았다. 남자의 신체 특성을 모르는 당시 나로서는 A가 왜 이렇게 당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성관계 자체도 무엇을 위함인지 알지 못했다. 단순하게도 A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기쁨과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취했을 것이다. 당시엔 일절 욕구를 느끼지 못했다.
집이 비워진 어느 날, 여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야한 비디오를 본 일이 있다. 알몸임을 추측할 뿐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곁눈질한 화면에는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남녀의 벗겨진 어깨와 클로즈업된 얼굴, 거친 숨소리가 전부였다. 리드미컬한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이제 나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았다고 오만을 떨지 않았을까. 부모님이 그리고 선생님이 쉬쉬하는 성을 마주 본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립처럼 여겼는지 모르겠다. 단단한 바닥 위에서 A와 첫 경험을 가진 이후에도 점차 아픔을 참을만한 정도였지 기분이 좋진 않았다. 서툴게도 삽입하기 급급하고 내뿜기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명확히 하자면 나 스스로 여성에 대한, 몸에 대한 무지가 상당했다. 그때의 내게 섹스란,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길 바라는 인정욕과 지난한 반항심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누구로부터 채워야만 하는 줄 알던 그 인정욕구에 대해서는 나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를 수치스러워하다가, 수치에 끌려가 옷을 벗고는 스스로를 더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게 중에 평생에 남을 첫사랑이 있다 할까. 처음 가진 욕망에 대한 그리움과 명백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은 그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시키기도 한다. 카오스에 굴복했건 맞서 싸웠건 중요한 건 생애 처음 느낀 이성에 대한 욕망은 처음 맛본 달콤한 포식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육체의 생리상 쾌락을 추구하고 그를 채운 경험을 쉽게 잊을 수 없지 않을까. 포장을 덧씌운 욕망의 향연은 10대 후반에 시작해 20대 어느 즈음 귀점을 맞이한다. 물론 마흔이 다가오는 지금에도 이따금에 허기짐과 어디를 긁고 싶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지만. 사실 나이와 상관없이 채우려야 채울 수 없는. 그 허무를 경험하고 또 경험한 즈음되면 어느 정도 초연해지고야 마는지 모른다. 이런 것은 어쩌면 아니의 말대로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믿음의 영역일까. 헛헛한 그리움은 분명 욕망에 대한 것은 아님에도 어느샌가 모르게 텅 빈 느낌에 사로잡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