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구는 구별해야지

by 하민혜

아빠는 시간이 맞으면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곤 했다. 널찍한 손을 맞잡았던 느낌, 큰 보폭에 맞추려고 종종거리던 작은 나의 발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자라나는 내가 보기 싫은 마냥 아빠는 점점 더 바빠졌다. 실은 아빠가 원할 때엔 내가 시간을 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엄마나 아빠보다야 학교 생활이, 친구가 내겐 더 큰 세상이 된 까닭이다. 13살, 중학교 입학하기 얼마 전 나는 처음 브래지어를 착용한다. 조금씩 여성성이 드러나던 시기다. 학교엔 변태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상상이 아니라 친구들 입에 오르내리는 그의 별명이 그랬다. 그건 대놓고 드러내는 선생의 악행 때문이리라. 여학생을 무릎에 앉히거나, 겨드랑이를 꼬집는 처벌, 열 차례를 수도 없이 시키며 위아래로 훑는 시선 등이 그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선생은 늦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 하나 없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날은 아빠가 나를 어딘가에 데려다 놓아야 했다. 보조석에 앉은 나는 그때 왜 하필 혼자였는지, 왜 굳이 서랍을 열었는지 그 길을 알 수 없다. 문득 손에 들려 있는 건 아빠와 낯선 여자의 사진이다. 한 손은 어깨에, 다른 한 손은 허리에 두른 채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눈을 돌리면 될 것을 일편 정직한 아빠를 닮아 그러지 못했다. 얼굴이 벌게진 채 한참을 노려보다 다시 서랍에 집어넣었다. 다음 장면은 아빠가 태연 작약하니 운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말들이 쏟아져 나갈까 입을 꽉 다물었다. 심문하거나 다그칠 필요가 없다. 아빠는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진실을 아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때의 나에겐 아빠가 여자를 좋아하는 '남성'이라는 자체가 낯설었다. 더욱이 학교에서 낯짝 두껍게 노래를 부르기까지 하는 변태 선생님 덕에, 그 진실이 불편했다. 실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고개를 내젓거나 혐오할 일은 아닌 것이다. 한창 여성으로 드러나던 시기에 나는 그런 마음에 두려움을 가졌다. 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이때부터 시작인 거다. 아빠는 얼마 못 가 엄마와 싸우게 됐고, 나는 집 앞에서 그 소리를 가만 듣고 있었다. 처음은 서서 듣다, 제대로 서있질 못하고 바삐 도망쳤다. 나에게만큼은 그 소리로 온 하늘에 천둥이 치듯 했고, 더 듣다간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 길로 곧장 건너에 사는 친구집을 향했다.


아빠는 버젓이 이혼을 요구했다. 제 딸인 나에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고백하기까지 했다. 언뜻 잔인해 보이지만 나는 아빠를 이해한다. 거짓말하는 게 더 나쁘다. 너무 당당해서 할 말을 잃긴 해도 수그린 자세로 진실을 숨겼다면 나는 아마 아빠를 더 미워했을 것이다.


사랑이 뭘까, 고민하기엔 너무 어렸다. 감당해야 하는 건 엄마의 고통과 아빠의 부재였다. 이혼을 절대 해주지 않겠다는 엄마 덕에 우린 실물의 아빠만을 잃은 거다. 집은 적막했다. 죄책감인지, 우리들 때문인지 생활비를 계속 붙여왔다. 나는 원래 아빠가 없던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세상 바쁜 척을 했지만 가슴 한 귀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다. 엄마가 느끼는 배신감, 수치심,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먹었다. 이후 여러 갈래가 있을 테고, 나는 남녀 관계에 무덤덤해지는 쪽을 선택한다. 만나자면 만나고, 싫으면 헤어진다. 남녀 관계로 마음에 무게를 두거나 요란을 떨지 않는다. 누군가 절절하게 나를 사랑한대도 와닿질 않았다.


나의 삶에 결혼이 있다, 없다 보단 그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이건 아이를 좋아하는 천성 덕이다. 어릴 적에 주변 어른들은 내게 선생이 되라고 할 지경이었다. 어떤 목적 없이도 나는 어릴 적부터 아기 돌보기를 좋아했다. 친척부터 동네 꼬맹이들은 모두 나를 거쳤다. 성인이 되면서 사랑받고 싶다,는 느낌보다 아이를 낳겠다,는 신념이 강했을 터다. 원대로 된 거다. 사랑받는 일에 관심 없다 손을 놓으니, 사랑 주는 일에 서툰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부창부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을 받는 게 어색한 줄 알지만, 주는 것도 할 줄 모르는 거였다. 애가 닳게 연애하다 결혼하면 달라질까. 잘 모르겠다. 애초에 모든 일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과정으로 나아가지 않나 자위한다. 남편과 나는 자연스레 위기까지 나아갔지만,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위기를 지나올 적에 아빠와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 거다. 탓은 아니다. 남편이 자연스레 어릴 적 아빠와 그 역할로 겹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왜 그런지 알고 싶지 않지만 남편은 아빠와 말투부터 외모까지 빼다 박았다.


아무리 가슴이 두근대도, 눈물이 줄줄 흘러도 사랑을 모르겠단다. 그런 내가 달라진 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다. 남녀 간의 사랑은 대체로 호르몬의 역할이 지대하다 여겼다. 시작이 그렇다는 거다. 아이들이 자라고, 성에 눈을 뜰 때면 나는 사랑과 욕구를 두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생각이다. 당초 태어나길 그걸로 태어나는데, 수치스러울 게 있나 싶다. 배가 고프면 밥이 먹고 싶은 게 당연하다. 욕구가 오르는 일을 비정상이라고 보는 시선부터 거둬야 한다. 그 자체를 수치주는 덕에 학교에 변태 담임이 있고, 껌껌한 뒤켠으로 야동이 돌아다닌다. 억누른 욕구는 반드시 구석진 자리로 삐져나오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사랑과 욕구를 구별하는 일이다. 내가 그랬듯 자칫, 무어가 무언지 모르는 채 맞닥뜨리는 것보다야 가감 없이 터놓을 수 있길 바란다. 세상은 쉬쉬하고 억누르라 할 테지만, 가정 역시 아이들에겐 한 세상이기에 나로선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터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새하얗게 헤매다 뭣도 모르고 남편과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름 사랑과 욕구에 대한 정의를 갖게 됐다. 엎어지고 까지는 경험도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엄마 마음은 조금 덜 엎어지고, 약하게 넘어지길 바라는 거다. 사람들은 사랑이나 욕구가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괜한 공부니, 취업이니 하면서 모른척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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