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 경험이 적당한 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이라, 누군가에겐 많을지 적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만났던 이들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깊이 사랑받지도 사랑을 주지도 못한 기억이다. 호르몬이 치솟는 젊은 날이었으니, 애틋한 일이 간절한 적이 있느냐면 그런 일이 없지 않겠지만.
갑작스러운 연애 고백은 다름 아닌, '사랑'에 대해 여러 고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부턴 아무래도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엄마로서의 사랑에 목을 매었다. 이는 어쩌면 늙어가는 몸에 따른 자연의 섭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타는 사랑 같은 건 자고로 몸이 최고조일 때에 하는 거라는 생각이다. 30대 후반의 친구들 중에 아직 엄마가 되지 않은 친구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사랑은 남자 친구를 향해 있긴 하지만, 이전처럼 불타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계산적이고, 살짝은 뒤로 빠져 있는 모습이다. 뒷걸음질 치지 않는 연애만 해본 나로서는 그런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신기하다.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닌데도 어딘가 지쳐있는 모습은 지금의 나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행스럽게도 크게 아프거나, 다치는 일 없이 잘 자라줬다. 이제 8살, 9살이니 여전히 손이 가는 듯 하지만 이 부분은 순전히 나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성격이, 성적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 이것은 사랑과는 무관하다. 어쩌면 사랑의 반대에 서있는 두려움일 뿐이다. 지금 이대로 아무 문제가 없는 나의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순간, 나의 역할을 다른 엄마의 역할과 비교하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아이는 잘하고 있는 걸까?' 염려하는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그 순간에 있지 못한다. 아이의 미래로 가서, 아이의 잘못된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치 조금은 피곤했던 나의 연애를 떠오르게 한다. 나는 연애를 늘 그런 식으로 했다. 지금 당장 좋은가로 시작은 하지만, 이내 미래를 그려보며 끝을 내곤 했으니까. 지금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사람은 나중에 이만큼은 사랑해주지 않을까 봐, 지금 나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결국엔 끝날 것 같으니까. 이건 사랑이 아니라 차라리 미래를 점치는 예언가와 같지 않나 싶다. 찰나, 찰나가 이어지는 게 삶이라고는, 마음먹은 생각들이 나의 미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봐줄 만한 외모로, 무난한 성격으로, 호감을 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 그리고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에는 그 누구보다 서툴렀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여전히 서툰 것은 물론이다.) 사랑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사랑을 밀어내는 나는, 아이들과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다만 연애처럼 도망갈 수 없기에, 미래를 걱정하는 나를 마주 보는 수밖에 없음이 다르다. 아이들은 꼼짝없이 부족한 나를, 모자란 나의 생각과 느낌들을 직면하게 만든다. 나는 인정받지 못할까 봐, (무시당할까 봐) 결국 사랑받지 못할까 봐, (사랑을 주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게 당연하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을 위한다고 나 스스로와 상대방을 속였다. 나는 내 미래가 걱정되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 버림받을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렵다. 아이들이 겪을 상처들을 바라봐야 하는 게(바라보기밖에 할 수 없는 게) 겁이 난다. 설사 나 스스로가 완벽한 엄마가 된다 해도, 아이들의 인생에서 매운맛, 쓴 맛을 없앨 수 없음은 예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할 것이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때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무력감을 나는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엄마가 된 이후로, 도망칠 수 없는 마음에게 나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마음은 무엇일까? 이건 아이들을 위해서일까? 나를 위해서일까? 지금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사랑일까, 두려움일까?
오래전에 읽은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에서 사랑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는게 생각났다. 학습(?)이 필요한 최소한 여러 차례 실패할지 모르는, 연습(?)이 필요한 일인 걸까? 어쩌면 평생을 가도 사랑할 줄, 사랑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미래 저널에, '왜 사는가'란 질문에 매일 답하고 있다. 여태껏 쓴 이야기들을 모두 끌어모아보니 가장 많이 적혀있는 단어는 '사랑'이다. 인생의 과업, 인생의 완성? 그것은 어쩌면 사랑과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제대로 주고받기 위해 극복해야 할 감정은 아니. '끌어안아야 할' 감정은 무엇보다 두려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