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어린 시절

그 땐 그랬지-작은 나의 세상

by 하민혜

길을 걷다 보면 발에 차이는 작은 풀, 들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혼자 갔는지, 누구와 함께 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풀밭 위에 앉아 잘은 들꽃들을 매만지던 기억이 남아있다. 제법 자주 가서 앉아있던 것이 생각난다.

또 집에서 많은 걸음을 걸으면, 작은 엄마의 집이 나오는데 그 길을 걷기 좋아했다. 논두렁 사잇길을 걸어가다 보면 작은 꼬마에게는 언제나 발아래 밟히는 풀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랏빛, 분홍빛, 노란 빛깔의 손톱만 한 들꽃들도 참 예뻐했다. 5살 즈음, 그런 작은 들꽃을 손에 들고 찍은 사진에는 해맑은 얼굴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릴 적 나의 세상이었던 우리 동네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동네 유지 즈음되시는 아버지와 얌전한 서울 엄마, 진중한 할아버지, 쾌활한 할머니와 함께였는데 나는 어딘가 자연스럽게 그 모든 면을 닮아 있었다.

7살이 되고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때에만 해도 유치원은 흔하게 다니는 곳은 아니었다. 시골 마을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조금 어깨가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을 들어서면 너른 마당에 놀이터가 있었다. 갖은 풀을 으깨며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했다. 놀이터 옆으로는 유치원을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햇빛이 찬란한 어느 날이었다. 조용히 계단을 오르다 2층 난간에 올라섰다. 놀이터에는 미끄럼틀이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 보였다. 나는 난간에서 미끄럼틀을 향해 몸을 던졌다. 분명히 미끄럼틀 위에 내 몸이 착지할 수 있다고 상상했다. 아직도 그때의 장면이 짜릿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큰 소리를 내며 쿵! 다행스럽게도 발바닥으로 바닥을 쳤다. 겁을 내어 몸을 비틀었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발바닥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강한 전율이 올라왔다. 지금 얼른 드는 생각이지만, 그 일로 내가 무릎이 약한가 싶다. 어쨌든 미끄럼틀에는 올라서지 못했지만, 나의 마음속에 기이한 성취감이 올라왔던 것 같다. 마치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엉뚱한 7살의 아이는, 대체로 동네 아이들을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출처 없이 불붙은 자신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늘 동네 꼬마들의 골목대장 역할을 했다.

오르고 절정에 닿으면 내리는 삶은 숙명이기에, 내리막길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시골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정다운 고향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10살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번잡한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울타리를 벗어난 낯선 변화는 사람을 성장하게 하겠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대로 주저앉기도 한다. 꼭대기에 올라 있던 10살의 나는, 끌고 다닐 아이들이 사라진 새 학교에서 피 흘리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특유의 발랄함으로 이내 친구를 사귀었지만, 이미 묶여 친해진 아이들 틈에서 언제나 소심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때에 나는 내게 있는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활발하고 오두방정인 나로 살다가, 또 다른 자아가 숨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고 싫었다. 부끄럽고, 나서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나를 향한 미움은 타인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 역시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조금씩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반에서 가장 인기 좋은 친구 둘 사이를 찢었다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떨어져 바라보면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3학년 2반이 전부인 작은 나에게는 눈을 가릴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 하필 가장 인기 좋은 두 친구 중 하나가, 나와 친해진 것이다.

그것이 못 견디게 싫었던 다른 친구 하나는 나를, 반 친구들이 따돌리게끔 만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셋이 가깝게 지내보려 했지만 먼저 나와 친해진 친구는 또 다른 친구 하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3학년 2반은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반으로 나뉘어 버렸다.

시골 마을에서 순수하게 한마음으로 떼 지어 다녔던 나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집 안에서조차 다툼을 싫어했던 나였다. 형제들이 싸울라치면 내 것을 양보해서 싸움을 무마시켜 버리곤 했다. 이 버릇이 어디 가나 싶다. 나는 어떻게든 다툼을 멈추기 위해 엄마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3학년 2반 아이들을 문방구에 끌고 가서 불량식품을 사주며 매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두 갈레가 하나 된 듯 평화가 찾아와 안심했지만, 집에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 되었다. 혹시나 엄마가 알게 되시면 어쩌나 늘 조심히 숨을 쉬었고, 눈을 내렸다. 집에 있을 때 누가 말이라도 걸으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죄의식이 심했다. 나는 부모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낼 때면, 그것도 모르는 엄마를 감히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께름칙했다. 그러면서도 나름 대의를 위한 도둑질을 멈출 수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여느 날처럼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민혜야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꾸나. 먼저 할 말 있니?'

'아.. 아니요 엄마 저 학원 가야 돼요.'

'학원은 오늘 빠지렴. 잠시 방에 있거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들통이 난 것이다.

엄마가 오기 전 수분 동안,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귀에 내리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삐그덕 방문이 열리고, 나는 순진한 척하는 얼굴로 침을 삼켰다.

'엄마는 다 알고 있어. 그리고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지 걷어올리거라.'


묻지도,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으셨다.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바지를 걷어 올렸다. 아팠다던지, 그것이 서러웠다던지 하는 것들은 기억에서 지워졌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내 안도했다는 것이었다. 깊은 암흑 속에 있는 나를, 엄마가 밝음으로 꺼내 올려준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방에서 노트 한 장을 찢었다. 그리고는 일기를 써 내려가듯 내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를 적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빼곡히 채워 엄마 방에 가져다 두었다. 그 이후, 나는 10원 하나 다른 사람의 돈을 만진 적이 없다.

이따금 작은 나의 딸이, 내게 도끼눈을 뜨다가도 '죄송해요. 사랑해요.' 줄줄이 써 내려간 편지를 내게 건넬 때면,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나 역시 딸의 진심을 언제나 고이 받아준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존경했던 것 같다. 집이 부자였거나, 아주 멋진 직업을 가지셨던 것은 아니다. 억울한 적이 분명히 많았고, 형제들 사이에 끼어 있는 스스로가 답답한 적이 있었다. 좀 더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나는 부모님에게서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기대하고 실망하곤 했다. 실은 나의 부모 역시, 그들의 부모에게서 결핍을 받았기에 조금은 모자란 사랑을 내게 건네어 주신다. 마흔이 다 되어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평화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힘들고 어려울 때 등대처럼 앞을 밝혀주셨던 부모님께 아무리 해도 나는 같은 사랑으로 보답할 수 없다. 바라기만 했던, 모든 것이 당연했던, 어쩌면 그래서 늘 두 분께 서운해했던 나를 가만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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