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의 친구 엄마가 제게,
"서연 엄마는 사춘기가 언제였어요?"라고 물었습니다.
툭 떨어진 물음에 살얼음위를 걷는듯한 때가 떠오릅니다.
열여덟, 애닳게 첫사랑이 지나가고 성인은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닌 때입니다. 저의 시선은 가족이 아니라 온통 외부를 향해 있었고, 중심 없이 끄달렸어요. 가정 내에 부모님의 불화는 부대끼는 마음을 키우는 데 충분한 먹잇감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꿈은 한의사였다가, 심리학자였다가, 선생님이기도 했어요. 그럴싸하기도 하고 어쩌면 저 일들 중에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테죠. 일그러진 마음 상태로 새벽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것을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야 할 마땅한 이유도 찾지 못했어요. 대학을 가면 얼마나 근사한지, 그 직업은 어떤 느낌일지 그 누구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름 성실한 덕에 그럭저럭 중상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하지 않아요. 다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긍정적으로 응해줍니다. 한 번은 동물 의사, 유투버, 마카롱 사장님, 부동산을 하고 싶다는 딸에게, 무엇이든 모두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글귀를 본 일이 있어요. 아이들에 대한 제 마음이 꼭 그래요.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이 꿈이기보단, '어떠어떠한 무엇이 돼서 어떻게 살고 싶다.'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명사보다 '어떠한', '어떻게' 라는 수식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열여덟이 그랬듯, 누군가에겐 꿈꾸는 일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명사'인 줄 알았던 어린 날엔 더욱 꿈을 꾸기 어려웠어요. 막연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은 또 갖고 싶다는 것은, 그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기회가 넘쳤던 열여덟 살,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휩쓸려만 다녔습니다. 아이 둘을 양육하며 먹고사는 일을 신경 쓰고 있음에도 느지막이 꿈을 꿉니다. 책임이 늘어난 만큼 해야만 하는 일들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그립니다. 꿈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었어요.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고 숙성되는 이제 즘 되어 흐트러진 생각들이 걷어지고 꿈은 선명해집니다.
열여덟, 끝이 있을까싶게 방황하며 흐릿하고 트미해 꿈이 보이지 않았어요. 진실을 말하자면 꿈을 강요당했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 밖을 보며 머리로 말해야만 했으니까요. 이젠 누구도 꿈을 말하라 하지 않지만 매 순간 사랑을 나누고, 베풀고, 여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글을 쓰며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