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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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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l 18. 2024

서두르지 말어야지

아침편지

안녕하세요. 밖에 물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얼마나 품고 참았던가, 멈출 기색이 없어요. 말없이 하얗기만 해요. 


어제 아이들과 고양이를 데리고 초음파를 보러 갔어요. 배가 살짝 불뚝해서요. 임신이 맞다니 동그란 눈으로 초음파 화면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고양이도요. 가끔은 정말이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8월 초에서 중순이면 새끼 냥이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옆에 작은 파리가 손을 비벼 얼굴을 닦고 있어요. 부지런하네요. 반복하는 행위에 어떤 생각이 있진 않겠죠? 아마 '의도'는 있을 겁니다. 이젠 뒷다리를 비비적대며 날개를 닦고 있어요. 좀아까 방충망을 제치고 멍하니 바깥을 볼 때 비를 피해 들어왔나 봅니다. 


나와 다른 생김을 괜히 징그러워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저는 작은 벌레가 잔뜩 모여있을 때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마치 사람이 많은 축제나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데요. 어떻든 호들갑은 떨지 않아요. 가만히 보거나 조용히 자리를 피해요.


처음 세상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엄마가 무엇을 더럽다, 예쁘다 하는지를 보고 배워요. 아무렇지 않게 곤충을 바라보는 엄마를 둔 아이라면, 벌레와도 친구가 됩니다.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 곁이면, 같이 좀 두려워질 수밖에요.


얌전히 제 몸을 닦는 파리를 보며 생각해 봅니다. 차원이 다르다 믿는 인간 자신은, 저들과 얼마나 다를까 말이지요. 우리에게도 분명 의도는 있지만, 본능과 관성을 제하면 무엇이 남을까요? 습관처럼 오늘을 사는 것은 제 다리를 계속 비비적대는 파리와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내가 파리인지 하민혜인지, 싶네요.


그제 강연에서 말씀드렸어요. 저는 돈밖에 몰랐던 사람이라고요. 공부밖에 몰랐던 것보단 멋이 좀 없지만요. 뭐라도 '나'는 없는 겁니다. 질문하지 않아요. 습관처럼 욕망을 쫓다 나란 존재를 하얗게 잊게 돼요. 속으로 자꾸만 쌓이는 존재에 대한 갈망이 이따금 새어 나오거나, 터지기도 하지만요.


창에 풍경이 한 폭의 유화처럼 뭉개져요. 새벽부터 야경이 펼쳐지네요. 조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오늘 약속을 미룬 참이에요. 빗길에 오신다니 염려돼서요. 비를 피한 파리의 안녕과 그대의 평안을 기도해요. 오늘은 늦고 미뤄도 좋으니 서두르지 않기로 약속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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