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덕분에 오늘,
궁금해
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
어떻게 지우는지
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흰색에 흰색을 덧칠
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은
어떻게 울까
'안미옥' <캔들> 중에
친구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다. 덤덤하게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하나같이 낯익은 얼굴들이다. 친구의 다른 가족을 어려서부터 보아왔으니까. 모두 헬쭉하니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반겼다.
익숙한 얼굴 사이로 빼꼼, 토끼처럼 붉은 눈시울의 친구가 보였다.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다. 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가슴이 욱신거려 고개를 떨궜다가 들었다. 무슨 정신에 밥을 먹었나 싶다. 친구가 앞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길 할 적에도, 감히 '엄마'라는 단어를 올리지 못할 때에도. 어깨 한 번 두드리지 못하고 그저 앉아 얼굴을 바라봤다.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리를 털고 나왔다. 우윳빛 하늘에 세상이 멀겋다. 먼지처럼 날리는 눈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멍하니 서 있었다. 핸드폰을 보느라 고개 숙인 남자와 신경질을 내며 통화하는 여자가 보였다. 비스듬한 상가 앞에 아주머니가 눈을 쓸고 있었다.
누가 죽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오늘을 산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사람이 죽고 죽임을 당하고, 태어나고 병이 들 텐데. 순간 덧없이 스러진 어머니 얼굴과 청소하시는 어머니 얼굴이 겹쳐 보였다. 유심히 그 얼굴을 살폈다. 동그랗게 넉넉한 얼굴에 입술이 쳐진 것이 연배마저 비슷한 듯했다. 괜히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가로수 잎은 간들거리고 하늘은 파랗다. 당신의 우주가 소멸했는데 나의 우주는 여전하다. 내가 죽는 날에도 사람들은 마지못해 출근할 것이고 풍경을 지겨워하겠지. 날이 덜 차가워 땅에 닿은 눈이 질척거린다. 애틋하고 하찮다. 먼저 사라진 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맙다. 버틸 수 없는 그대 등에 기대어 오늘에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