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녀가 오늘 학교에서 수업은 잘 듣고 왔나요?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자투리 시간을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냐고요? 답은 간단합니다. 자녀에게 물어보고 들어주고, 궁금한 건 다시 물어보고, 함께 웃어주면 됩니다. 간단하죠?
이처럼 간단한 것이 어떤 집에서는 너무나 즐겁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또 어떤 집에서는 물어보다 엄마가 화병을 키울 만큼 힘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저희 집 큰아이와 작은 아이처럼요.
큰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말하고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하루 일과를 쏟아놓는 아이라면, 작은 아이는 어르고 달래야 듣고 싶은 말을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표현이 적은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의 일과를 물어볼 때도 "오늘 하루 어땠어?"처럼 두루뭉술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냉장고에 붙어있는 아이의 시간표를 보고 "오늘 체육시간에는 뭐 했어?"와 같이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자녀에게 꼭 맞는 맞춤형 질문은 부모만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질문이 달라지면, 대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 놓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오늘의 점심 메뉴'였습니다. 수업이 아니라 실망하셨나요? 작은 아이는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해달라고 할 때 가장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하는 아이여서 이 질문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식단의 메뉴를 기억해 내고, 오늘의 베스트 메뉴와 그때의 특별한 상황을 기억해 내기 위해 뇌는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일단 부모의 질문에 아이가 입을 열면, 그것을 충분히 즐겨주세요. 절대 평가하거나 충고하지 말고요.그다음 바로 앞 시간, 혹은 바로 뒤 시간에는 무엇을 배웠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세요. 그러면 아이가 하루 일과를 기억해 내는 것이 훨씬 쉬울 뿐만 아니라 수업은 잘 듣고 왔는지,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기억하는지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제 경우처럼 꼭 점심 메뉴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날 아이가 가장 먼저 기억해 내는 시간도 좋고, 좋아하는 과목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아이가 학교의 일과를 기억하고, 그것을 자신의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기억력과 메타인지를 높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니까요.
이제 학교를 다녀오고 난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강의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하루 공부 시간을 물으면 바로 이런 질문이 되돌아옵니다. "학원에 간 시간 포함해서요?", "숙제한 시간 포함이에요?" 이렇게 말이지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다시 질문으로 되돌려 줍니다. 대부분의 초, 중학교 학생들은 학원에 있는 시간, 숙제한 시간을 모두 공부 시간에 포함시키고 싶어합니다. 왜일까요? 많이 공부한 것처럼 보이고 싶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만족감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에게 물으면 대답은 달라집니다. 학원에 있는 시간, 과제나 수행평가를 준비한 시간은 포함시키지 않거든요. 온전히 혼자 공부한 시간 또는 자율학습 시간만을 하루 공부 시간에 넣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채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공부가 진짜 실력을 쌓는 것이라는 것을 고등학생쯤 되면 알게 되나 봅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초등학생들에게 하루 평균 몇 시간 공부하는지 물으면 보통 3시간 이상이라는 답이 가장 많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며 3시간이나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겠다고 하면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귀엽죠? 그때 저는 '시간 일기'를 쓱~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어제 하루를 기억해서 1시간 단위로 무엇을 했는지 적어보도록 합니다. 적은 것을 보면 학생의 성향과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자신이 작성한 것을 가지고 '방과 후 수업', '학원 수업', '이동 시간', '식사 시간', '방문 선생님 수업', '잠자는 시간'과 같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혹은 내 마음대로 시간을 옮길 수 없는 것을 표시하게 합니다. 그러면 표시가 되지 않은 시간들이 생기죠? 이것들을 모아서 계산하면 비로소 자신의 '자유시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자유시간을 아이들은 보통 숙제, 공부 혹은 독서, 취미생활, 게임, TV나 유튜브 시청, 휴식 등으로 채우게 됩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자유시간은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초등학교 5학년 전후의 아이들을 기준으로 보면 자유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3시간에 불과합니다. 고학년이라 하교도 늦지만,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 가는 피아노 또는 태권도 같은 사교육을 많이 하기 때문이죠. 물론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자녀의 자유시간은 늘어날 것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시간 일기'를 적고 나면 자신이 하루에 3시간이나 공부한다고 말하는 것에 약간의 문제가 있음을 아이들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학교 수업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충분히 생각하고 적어볼 수 있도록 넉넉한 시간을 제공할 수 없고, 무엇보다 현재의 시간을 기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도와주면 어떨까요?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가 가능하려면 자세히 기록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자녀만 할 게 아니라 부모님도 함께 작성해 보세요. 하루 전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1시간 단위가 아니라 30분 혹은 20분 단위로 말이죠. 저는 이것을'시간 일기'라고 합니다. 알람을 맞춰놓고, 정해진 타임에 아이를 불러 지금 뭐하고 있는지만 적도록 도와주시면 됩니다. 효과 만점입니다.
작은 아이의 6학년 시간일기 (11월4일)
작은 아이의 '시간 일기'를 보시면 좀 이해가 쉬우실 것 같네요. 공책 한 장을 북 찢어 20분 단위로 시간을 적어놓은 것뿐입니다. 어렵지 않죠? 그리고 20분마다 아이를 불러 지금 뭐하고 있는지 쓰게 했습니다. 조금 귀찮아 하긴 했지만 아이의 입에 포도 한 알씩 넣어주면서 '오케이'를 여러 번 외쳤던 기억이 있네요. 머리 감고, 말리고, 고데기로 꾸미고, 양치까지 1시간 40분가량을 썼군요. OTL
하루를 기록한 '시간 일기'를 보며 잠자기 전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딸아이는 자신이 학원 가기 전 이렇게 많은 시간을 외모 꾸미기에 사용하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예스~!! 스스로 알아차렸네요. '시간 일기'가 효과를 보는 순간입니다. 저는 딸아이에게 공부한 시간(초등학생은 숙제 포함)에 박스 표시를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계산해 보라고 했죠. 이날은 1시간 40분을 공부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파악하면 다음날 하루는 어떻게 보낼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됩니다.딸아이에게 소감도 적어보라고 했습니다(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잘했다' 한 마디는 자신에게 하는 칭찬이었고, '영어 숙제는 최대한 전날'이라고 적은 것은 아쉬운 점이었답니다.
나의 하루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 '시간 일기' 어떤가요? 자녀와 함께 부모님도 해보세요. 부모님께는 '시간 일기'를 쓰고 난 후 이런 질문을 셀프로 해보시길 권합니다. 하루 중 아이와 함께 눈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나를 위한 시간 그리고 나를 돌보는 시간은 얼마나 가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