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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Feb 11. 2022

'자기주도' 와 '학습'

내가 생각하는 자.기.주.도.


학습과 공부, 저의 경우만 해도 이 두 단어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문맥과 상황에 따라 번갈아 사용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학습은 무엇인가요?’, ‘공부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제 답은 동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공부를 사전에 검색하면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나옵니다.


‘국어공부’, ‘입시공부’, ‘글공부’, ‘말공부’, ‘마음공부’와 같이 공부란 단어는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에 결합되어 폭넓게 사용됩니다. 공부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반대말이 존재하지 않지요.


학습은 어떨까요? 學(배우다 학)과 習(익힐 습)이라는 한자의 조합으로 지식을 배우고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공부와 같습니다. 하지만 사전에는 경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나 그 잠재력의 변화라는 의미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반대말은 교수(敎授:학문이나 기예를 가르침)이고요.




공부와 달리 학습은 배우는 사람과 그 사람의 변화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에 공부가 아니라 '학습'이란 단어가 붙은 것은 아마도 배우는 사람(학습자), 경험, 지속, 잠재력, 변화 같은 키워드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자기주도학습을 강의하고 있지만, 초중고 시절에는 자기주도학습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의 잠재력 믿어주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고, 공부를 왜 하는지 물어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은 고3이면 모든 공부가 끝나니 그때까지 참고 버티라고 했죠.




학습법과 관련한 특강을 듣기 위해 모인 학부모님들께 ‘자기주도학습’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 중 ‘스스로’라는 단어는 자녀의 학령을 떠나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주도’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 때문이겠지요. 부모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내 아이를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해 줄 수 있다면 이런 말이 매력적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아이는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OECD는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es)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복잡한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건강한 자아와 삶의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역량에 일찍이 주목했습니다. 여기에는 ‘도구의 지적 활용’, ‘사회적 상호작용’ 뿐만 아니라 ‘자율적 행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기주도적인 삶을 이르는 것이지요.




자녀의 삶을 부모가 대신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요? 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NO”를 외칩니다. 당신의 자녀를 얕보거나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아이들은 정보와 경험에 있어 어른들에 비해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선택과 결정을 미루는데 그것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와 함께 정보를 찾고, 관심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모는 자녀의 뒤에 위치해야 하며, 자녀의 선택과 결정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빈도를 차츰 늘려가면서 책임조절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자기주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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