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혼자 공부하는 것을 자기주도학습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에 큰 오류가 있음을 미리 말해두고 싶습니다. 사교육의 필요는 자기주도학습의 과정 중 자기 성찰(모니터링)의 단계에서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어떤 방법으로 채우고, 만회해 볼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자녀의 학령이 높아지고, 더 이상 부모가 자녀의 공부를 봐주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면 사교육을 찾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가 스스로 사교육의 요구를 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말이죠.
큰 아이는 6학년 2학기가 되자 수학 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불안한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평소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라 그 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영어의 경우 학원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나머지 과목은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곁에서 아이의 공부를 돕고 코칭했지만 아이에게 선행을 먼저 권유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렵지 않았냐고요? 늘 어려웠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공부를 봐주다 보면 다른 것보다도 아이의 태도와 말투에 감정이 올라와서 티격태격하기 일쑤입니다. 아이가 울어서 혹은 제가 버럭 화를 내며 공부를 끝냈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공부의 주도가 엄마에서 아이로 넘어가면서 점차 그 빈도는 줄어들었습니다. 시점은 가정의 상황과 자녀에 따라 각기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메타인지 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초등 4~5학년이 되면 공부할 과목, 범위, 시간, 문제집, 방법 등을 자신이 정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무척 서툴 것이고, 공부의 범위와 양은 부모가 바라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문제 해결의 길잡이'라는 수학 사고력 문제집을 아예 빼버리더군요. 채점을 하고 바로 고치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한 시간에 해야 할 분량을 어떻게든 끝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이긴 했지만 채점 후 바로 고치기로 방법도 수정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나중에 한꺼번에 고치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자녀의 학령이 초등학교 4학년 이하라면 학습보다는 부모와의 좋은 관계 만들기나 사소한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데 더 힘을 쏟길 당부합니다.
문제는 작은 아이였습니다. 언니 따라 덩달아 2학년 때부터 학습의 분량과 시간을 자신이 정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기초학습능력에 결손이 생겼고, 그것은 교과학습의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5학년 첫 번째 수학 단원평가에서 처음으로 60점 시험지를 받아왔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긴 것이죠. 처음으로 수학 학원을 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스~!!! 감사합니다.' 제가 기다리고 바라던 바였습니다.
모든 것은 다 적절한 때와 시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의 성향에 따라 과정과 결과도 참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은 일종의 시스템입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기고, 그것에 대한 결과를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칭찬할 점과 부족한 점을 찾아내서 학습 목표를 조정하고, 공부 방법도 조금씩 바꿔 적용하며 자신에게 꼭 맞는 시스템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거나 부족하면 삐걱거리며 효율이 떨어지는 시스템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자녀를 꾸준히 관찰하면서 자기주도적인 학습 계획과 실천이 가능한 시기가 될 때까지 부모가 잘 기다리기 위해서는 자녀가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잘 견디셔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자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주도학습은 부모의 욕심과 조급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80년간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자기 계발서의 저자 로버트 콜리어(Robert Collier)는 매일 반복하는 작은 노력들의 합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온 아이에게 “오늘 시험 몇 점이야?” 하고 묻는 대신 “오늘 시험, 몇 점 맞고 싶었어?”로 대화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만큼의 성과를 기대했다면 자신의 예상과 생각이 어떤 의미와 결과로 이어졌는지 스스로 깨닫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