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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Feb 13. 2022

묻고. 관찰하고. 확인하고.

변화를 겪는 자녀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할 때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9년간 아이만 키웠습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어볼까 하는 마음에 집 근처 어린이집을 물색해 보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큰 아이 역시 저와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 아이가 7살, 작은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하루에 단 몇 시간이지만 온전한 저만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믿을만한 곳에 두 아이를 맡기고, 고요한 집에서 나 홀로 시간을 보낼 생각만으로 몹시 흥분되었습니다. 단 10분의 자유 시간도 허용되지 않았던 7년간의 육아로 몹시 지쳐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낼까, 나는 왜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기만 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늘 엄마의 자격을 의심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운명처럼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부모교육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진지하게 탐색할 수 있는 '에니어그램'이라는 도구를 알게 된 것이죠. 사람의 성격을 크게 9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날개와 역동을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알게 된 것만으로 제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의 자격을 운운하며 저책망하는 일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말을 조금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근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MBTI'가 새로운 관계 맺기 문법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수십억 명에 이르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중 하나에 자신이 속한다고 믿는 것이 비상식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빚어낸 사회 현상은 아닐까요?




학부모들 중에는 '자기주도학습'에 회의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엄마가 공부를 봐주다 보니 아이와 자꾸 싸워서 관계만 나빠지는 것 같아 도중에 그만뒀다는 말씀을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듣습니다. 저는 그럴 때 자신에 대한, 그리고 자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비단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뿐만 아니라 진로나 학습에 있어서도 나를 제대로 잘 는 것은 기본이면서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하듯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도 질문이 필요합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만한 질문을 뜬금없 묻고 답하는 시간을 마련하세요. 발란스 게임을 하듯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좋은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일 자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집중이 잘되는 곳은 어디인지, 사람을 사귀는 기준이 특별하게 있는지, 스트레스를 받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등을 가족들과 서로 틈나는 대로 물어주세요. 대답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 자녀가 대답하길 꺼려한다면 관찰하고 반드시 확인하세요. 부모의 프레임을 수시로 의심하세요. 마음을 비춰보는 창문이 자녀의 부정적인 면으로만 향해있지 않은지 자주 점검하세요. 


부모와 자녀의 성향이 비슷하면 관계에 큰 문제가 생길 일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작은 아이와 제가 그런 케이스였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느린 편이며, 말을 하는 것도 시키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 어려서는 키우기 수월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들어가고,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적으니 행동과 태도만으로 오해하는 일도 잦아졌고요.

아이와 한바탕 위기가 지나간 뒤 지금은 더 많이 관찰하고, 더 자주 확인하며, 더 오래 귀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확인'이 '취조'가 되지 않도록 타이밍과 어투를 신경 쓰고 있습니다. 나를 잘 알고, 자녀를 잘 알수록 서로를 존중하며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아이를 통해 깨닫는 중입니다.




책임과 조절을 경험하는 것이 '자기주도'라면, 아이가 처음부터 자기주도적일 수는 없습니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또 도전하는 무한 반복의 과정에서 부모 코칭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내 아이에게 꼭 맞는 코칭을 위해 묻고, 관찰하고, 확인하세요.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자리에서 혹은 다 함께 이동하는 차 안에서의 대화들이 자녀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이 생기는 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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