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가장 심오한 과제 중 하나가 뇌 작동의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뇌의 신경 회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기 신호와 화학 활동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흐름을 만들어내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뇌 과학자들은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리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죠. 우리의 뇌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하는 모든 과정에는 개인의 성격, 동기, 신념, 가치, 욕망 등이 다층적으로 복잡하게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뉴런의 모양 (출처 : 픽사베이)
뇌 신경계 단위인 뉴런은 그림과 같이 주황색 핵이 있는 '신경세포체', 거기에 연결된 '축삭돌기'를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를 닮은 '미엘린 수초'가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경세포체에는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가지돌기(수상돌기)'가 있습니다. 축삭돌기의 말단에는 다른 신경세포 혹은 근처의 가까운 신경세포와 다양한 감각 신호와 운동 신호를 주고 받으며 '시냅스'를 형성합니다. 축삭돌기를 따라 이동하는 신호의 형태는 전기 신호인데 반해, 시냅스와 시냅스 사이에는 신경전달물질, 즉 호르몬이라는 화학 물질이 관여합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를 닮은 '미엘린'입니다.흰색의 지방질 덩어리인 미엘린은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 신호가 누출되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잘 보호하는 일종의 절연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두껍고, 길수록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탤런트 코드」라는 책에서도 각 분야에서 재능을 보인 사람들의 미엘린이두꺼웠다고 소개하고 있죠.
미엘린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살을 비비고, 쓰다듬는 등의 접촉이 일어날 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을 때 두꺼워지며 길어진다고 합니다.
자녀가 어리다면 오래 눈 맞추고, 꼬옥 안아주고, 자주 쓰다듬고, 마사지해주세요. 자녀가 커서 쑥스럽다고요? 그럼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 자녀에게 직접 물어보세요.자녀와 사인을 만들어둘만 아는 비밀스런 애정 표현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중2가 된 작은 아이는 지금도 불쑥불쑥 "엄마, 안아줘"를 외칩니다. 말 대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저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릴 때도 있죠. 그럼 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가가서 힘껏 안아줍니다. 일종의 사인인 셈이죠. 딸아이가 저보다 키가 더 커서 제가 아이를 안아주는 것인지, 아이가 저를 안아주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요.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면 충분한걸요.
신경생리학자인 폴 맥린(Paul MacLean)은 인간의 뇌를 뇌간, 변연계, 대뇌피질, 이렇게 3개의 개별적인 뇌로 구성되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흔히 '1층 뇌', '2층 뇌', '3층 뇌' 또는 '파충류 뇌', '포유류 뇌', '영장류 뇌'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포유류 뇌'에 해당하는 '변연계'는 정서와 감정을 담당하기 때문에 10대의 뇌를 설명할 때 특히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변연계 중에서도 편도체와 해마는 학습과 기억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공포'와 '분노'라는 감정을 관장하고,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부호화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도 편도체가 작아져 분노와 공포를 잘 느끼는 못하는 아이로 등장하죠. 아래의 그림처럼 실제로 편도체는 해마의 끝부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서로 긴밀하게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와 편도체 (출처 : 네이버)
제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공포와 분노의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청소년기의 자녀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싸우거나 회피하는 모습은 모두 본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와 크게 갈등을 빚거나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사춘기 자녀가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각별히 신경 써야겠습니다.
공포나 분노의 상황에선편도체가 즉각적으로작동하는데 이때 일시적으로 다른 뇌는 기능이 멈추기도 한답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공부를 봐주던 엄마가 참고 참다가 아이에게 별안간 화를 냈다고 합시다. 아이는 그 순간이 매우 공포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일시적으로 기능을 멈추게 되기 때문에 방금 가르쳐 준 것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와 대화를 나누거나 자녀의 공부를 봐줄 때 때때로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잠시 자리를 피하거나 화가 누그러진 다음 공부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자녀의 학습과 기억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뇌에 저장된 지식과 정보는 휘발되어 사라집니다. 하지만 느낌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험을 우리는 종종 합니다.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재미있었어', '행복했어', '신났어'와 같은 느낌은 기억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뇌는 세상에 나와서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과 햇볕이 필요하듯 뇌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이 쌓여야한다는 걸 잊지 마시고, 자녀와 함께 행복한 추억 많이 쌓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