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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r 27. 2022

첫 모의고사 소회

나는 외고 신입생의 엄마입니다 6


올해도 서울시교육청 학부모책 강사로 활동하게 될 예정입니다. 2019년부터 4년째니까 올해로 면접도 네 번째였네요. 인성, 진로 같은 여러 영역도 많은데 하필 저는 왜 학습을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을까 늘 자문합니다. 제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학습 플래너와 관련된 강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학생이 제게 푸념을 늘어놓더군요. 자신은 아무래도 학원을 너무 많이 다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밤늦도록 학원에 있는 것도 힘들고,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성적이 오르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학생에게 학습 플래너를 잘 작성해서 부모님께 보여드릴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에 그 학생이 제게 와서 괜히 부모님께 말씀을 드린 것 같다고, 잔소리만 실컷 들었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자신에게 며칠 혼자 한다고 그러다가 흐지부지될 게 뻔하다고,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는 게 가능할 거 같았으면 진작 그렇게 했을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안타까웠고, 무척 미안했습니다.


자녀가 자신의 시간에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할지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는 부모님의 믿음과 지지는 기본이며 필수입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여유를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자기주도학습은 많은 시도와 실패,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조절해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단번에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가급적 이런 과정을 고등학교 입학 전에 최대한 많이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시가 바뀌지 않는 한 고등학교 입학 후의 실패와 좌절은 타격감이 좀 크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자기주도 학습법을 부모님들께 알려드리고, 가정에서 자녀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부모 강의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치른 첫 모의고사에 딸아이는 꽤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국어 점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다섯 개나 마킹이 비어있는 국어 시험의 OMR 카드를 받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성적은 둘째 치고, 딸아이가 이 상황을 얼마나 당황스러워했을까 생각하니 걱정이 되더군요. 입학 전 엄청난 과제로 이미 모의고사를 충분히 풀어봤다고 생각해서인지 아침 등교 때 "첫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보는 거야" 하고 큰소리치며 학교를 들어갔던 모습과 겹쳐지면서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학원에 가 있딸아이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습니다.

우리 딸,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지?
멘탈 부여잡고 학원까지 가느라 또 고생이네.
힘내, 이따 봐.

답장이 없는 걸 보니 '이거 큰일 났군' 싶었습니다.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딸아이를 데리러 가니 다행히도 딸아이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1교시에 장 트러블이 와서 다리를 베~베~ 꼬았다는 이야기며, 시간이 부족해서 마킹을 하지 못했던 이야기며, 담임선생님께 마킹을 다하지 못했다고 하니 한심한 듯 자신을 바라봤다는 이야기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습니다. 하루 종일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한편 딸아이의 멘탈도 확인할 수 있었던 너무도 귀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의 바람대로 이번 첫 모의고사는 딸아이에게 실패와 성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영어처럼 국어도 꾸준히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문학, 비문학 지문을 하루에 한 개씩 철저히 분석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담임선생님과도 상담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속상한 마음은 쪼끔만 내보이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니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남편도 귀가한 딸아이를 보자마자 "아빤 우리 딸이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펑펑 울까 봐 엄청 쫄았네" 하며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웃음은 능력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했던가요? 평소 아빠의 농담에 익숙했던 딸아이는 씩 웃으며 그날의 1교시를 무용담 들려주듯 재미나게 이야기했답니다.


지금 딸아이는 옆에서 모의고사 문제지를 다시 펼쳐 들고, 무엇이 틀렸는지 하나하나 체크하는 중입니다. "아깝다", "고치지만 않았어도 맞았을 텐데", "찍은 게 하나도 안 맞는 나는 운도 지지리 없네"라며 열분과 비속어를 토해내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이게 결국 내 실력인데 "라고 하네요. 그리고 EBS 모의고사 해설 강의를 찾아서 듣고 있습니다.




1997년 미국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Paul G. Stoltz)는 그의 책에서 역경지수(AQ, Adversity Quotient)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AQ는 수많은 역경에도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끝까지 노력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말하죠.


앞으로 3년간 무수히 치르게 될 테스트들이 딸아이의 역경지수를 높이는 데 모쪼록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눈물) 마지막으로 "딸아~!!! 다음에는 시험 전날 꼭 화장실 가서 큰일 보자"


<함께 읽어보기>

시험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https://brunch.co.kr/@minhyealakoko/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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