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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Jul 09. 2022

수행평가에 대하여

수행평가에 진심이었던 딸아이는...


정기고사를 치르기 시작하는 중학교 2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과목별 평가 반영 비율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받게 됩니다. 시험을 보는 과목과 보지 않는 과목에 따라 수행평가의 반영 비율도 천차만별이죠. 친절한 학교의 경우 학기별 수행평가의 시기와 활동을 아래의 사진과 같이 안내하기도 합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충 이런 식이죠. 과목당 수행평가의 항목이 적게는 한 개부터 많게는 네 개까지(예체능 제외)... 사실상 하나하나 부모가 챙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 중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행평가를 했는지 여부도 아이가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죠.

중2 딸 아이의 수행평가 중 일부 (참고만 부탁드려요)

선생님들도 평가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몇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여러 번에 걸쳐 평가하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많은 수행과제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님들은 알고 계실까요? 상대평가로 등급이 나누어지는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그나마 부담이 덜하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크게 섭섭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겐 결과로, 그것도 숫자로 ''라는 사람을 평가받는 가히 '충격적인 첫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친절한 학교는 사라집니다. 과목별 중간과 기말 지필고사의 비율, 그리고 수행평가 반영 비율만 안내될 뿐이죠. 이제부터 수행평가를 비롯한 모든 평가는 철저히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됩니다. 아이가 외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엄청난 책임감과 실패의 두려움에 몸부림 칠만 하죠. 수행평가의 비율높다 보니 평가 항목 하나로 점수의 편차를 크게 하면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예민한 고등학생의 경우 수행평가로 변별을 두기란 더욱 어렵기만 합니다.

고1 딸 아이의 성적 반영 비율과 교과별 분할점수 (참고만 부탁드려요)

큰 아이는 중간고사 끝기 무섭게 각종 독서기록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에 더불어 어마어마한 수행평가 과제를 해치워야 했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하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수행 지옥'을 경험했죠. 과정 중심 평가라는 명목과 생활기록부의 세특을 작성하기 위한 근거로써 수행과제가 작동하는 듯 보였습니다. 평가의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명확하게 안내받은 적이 없다 보니 아이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큰 아이는 모든 수행평가에 진심인 편입니다. 적당히 네이버 검색 결과와 위키백과를 짜깁기 하는 식의 수행평가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발췌독이라도 반드시 책을 읽고, 관련된 기사를 수십 개 찾아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정성이 아이의 실력으로 차곡차곡 쌓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실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하튼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짜증과 한숨, 그리고 다크서클은 늘어만 갑니다.


그러던 며칠 전, 차에 타자마자 책가방에서 상장 하나를 꺼내 보이며 "나 상 받았어" 하며 툭 던지는데...  "무슨 상?"

'전공어 말하기 대회' 우수상??  

오메오메~ 어쩐 일일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대회 같은 것은 실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수행평가의 하나로 주제 에세이를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결과를 기준으로 수상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수상자 대부분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특수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라 해외여행은 단 한차례 일본이 전부였고, 해외 거주 경험은 전무했죠. 그래서 딸아이가 수상을 했다는 것이 제게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고, 또 고마웠습니다. 여하튼 에세이 쓰기나 발표 과제 등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과제라는 것에 씁쓸함이 몰려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이 상장이 수행평가에 진심이었던 딸아이에게는 별다른 의미입니다.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도 고, 기말고사에서 답안을 밀려 쓴 전공어 시험 결과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위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혹여 작은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봐 큰 아이의 상장을 드러내 놓고 좋아하지는 못했지만... 1학기의 모든 시험과 수행평가를 완전히 끝낸, 그 홀가분한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엄카(엄마 카드)를 쥐여주며 둘이 맛난 거 사 먹고 오라 했습니다. 둘째 녀석이 좋아하는 마라탕(제가 썩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 먹고 싶은 걸 참아야 했던)에 공차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기분 좋게 들어온 두 딸의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덧.

시험 결과요? 방학식에나 알게 될 테지만.... 이제 와서 결과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고, 2학기를 기약하는 수밖에요. 그때까지 두 아이가 행복하게 이 시간을 즐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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