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직의 기회일까, 기로일까
대학 졸업 후 처음인가....
회사로부터 조직 문화 또는 역량 계발을 목적으로 제공받았던 사내 교육을 빼면, 자발적으로 직업 교육을 받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자동차 등록증 문제로 서귀포 시청에 갔다 우연히 민원 창구 옆에 세워진 가판대에서 눈에 띄는 전단지 한 장을 발견했다. 큰 볼드체로 쓰인 제목에는 ‘로컬 마케팅 크리에이터 양성 과정’이라는 글자가, 하단에는 경력 단절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라는 교육 제공처가 적혀있었다.
‘경력 단절 여성에게 로컬 마케팅 크리에이터 과정을 제공한다, 그것도 국비 지원으로?’
마케터로서 흰머리와 주름을 쌓은 나에게 제주에서 ‘로컬 마케팅’ 보다 더 흥미로운 키워드가 있을까? 거기에 크리에이터라... 교육 과정을 손가락으로 위에서부터 주르륵 훑으니, 블로그, 스마트스토어, 유튜브, 인스타그램 모두 핫한 콘텐츠 플랫폼들이다. 제주 로컬 문화, 상품 관련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마케팅 수업인 것이었다. 갑자기 신경이 머리로 쏠리면서 얼굴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오래간만이다.
기관에 바로 전화를 걸어 면담 약속을 잡고, 그로부터 열흘 후 상담사와 1시간가량 면담을 진행했다. 나의 몇 가지 이력을 들은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길 여러 번,
왜 이 과정을 들으려 하시는 거죠?
안타깝게도 제주도에는 선생님이 취업하실만한 그런 중견 회사는 없습니다.
이력서를 따로 준비해 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몇 마디 자기소개에 되돌아오는 그의 대답이 무거운 경력의 짐만 잔뜩 진 나에게 매우 현실적이고 냉철했기 때문이다. 제주는 물가 대비 인건비가 낮아 소위 말하는 decent 한 job은 없단다. 그래서 청년들은 육지, 특히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고 고임금인 부산을 선호한다고... <폭삭 속았수다> 의 애순이와 관식이가 손 마주 잡고 잠깐 섬을 등진 곳도 부산이었더랬지...
재취업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간의 경력을 살려 창직을 하고 싶어요.
목젖에서 비집고 나온 나의 가냘픈 목소리에 내가 흠칫 놀랐지만, 단걸음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원신청서 서류를 내미는 상담사의 손에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볼펜으로 꾹꾹 빈칸을 눌러 담으며 무엇이라도 지금 배워두면 다 ‘쓸모’가 있지 않겠느냐는 나의 다분한 의도를 그가 꼭 알아채 줬으면 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 사업계획서를 내라는 한 줄의 무심한 문자를 받았고, 태어나서 처음 그렇게 사업계획서라는 양식에 나의 일, 상상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법한 것들을 욱여넣게 되었다.
3월 막바지, 사업계획서 심사가 끝난 후 추려진 지원자들은 한 조에 4명씩 3명의 심사위원과 다대다 면접을 진행했다. ‘이거 정말 취업 인터뷰가 따로 없군….’ 다대다 면접은 신입사원 면접 이후 처음이다. 여태껏 회사에서 대표님, 임원분들을 한 방에 가득 앉혀놓고 보고 발표한 횟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 면접에 내 마음이 이렇게 콩닥거린다고? 지원한 경력 단절 여성 80여 명 중 15명을 선발하는 과정이었기에 함께 들어선 사람들 모두 긴장하고 격양된 모습이었다.
중앙에 앉은 심사위원이 끝으로 할 말이 있는 지원자는 발언해도 좋다고 한다.
전 이미 회사 명패를 파서 거실 구석에 있는
제 사무 책상 앞에 두었습니다.
꼭 뽑아주셔야 합니다!
누가 한 말일까…. 내가 한 말이었다. 사업계획서는커녕, 회사를 떠나 시간제로도 한 번 일해 본 적 없는 내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고요한 방이 떠나가도록 우렁차게 뿜은 말이다. 사실, 이렇게 내 이름 석자를 대표로 한 명패라도 만들어 두지 않으면 뒷걸음질 칠까 나를 의심하여 진작에 적당한 사이즈로 바니쉬 마감까지 한 나무 명패를 주문 제작해 며칠째 눈앞에 모셔둔 터였다. 잠시 후 머뭇거리던 옆 사람들이 덩달아 목소리를 얹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저녁, 통과 문자 한 통에 기뻐하며 설렜던 순간이 떠오른다.
대학 합격도, 취업 합격도, 승진 소식도 아닌 창직을 위한 농어촌 교육 과정 하나 통과했다며, 내 잘린 경력이 다시 이어진 마냥 난 참으로 행복했다. 설마 정해진 시간에 어딘 가를 향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은 아니었겠지?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였겠지? 경단녀가 아닌 경준녀, 경험으로 준비된 미래를 만들어가는 여성으로의 그 희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