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의 명분
도쿄에서 인사이트 찾기라는 명문으로 시작한 여행 8일 차. 이제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정한 행선지는 과거 지진과 전쟁으로 무너진 도쿄를 다시 일으켜 세운 '도쿄타워'와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거대 문구점 '로프트(Loft)'였다. 먼저, 로프트를 정한 이유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문구점인 만큼 분명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해서 도쿄인들이 준비하는 크리스마스도 궁금했다. 다음으로 '도쿄타워'는 도쿄인들에게 자존심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그 중심에 가보고 싶어서였다.
로프트는 일본에 160개가 넘는 매장이 있고, 도쿄에만 약 30개의 매장이 있다. 도쿄에서도 긴자, 시부야, 이케부쿠로, 키치조지점은 대형 매장으로 유명한데 나는 동선을 고려해 긴자 로프트를 찾았다. 로프트 대형 매장을 방문하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볼 것이 너무 많고, 살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흥청망청 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이미 여러 번의 일본 여행을 하면서 로프트 늪에 빠지고 헤어 나와 보았기 때문에 보고 싶었던 것들 위주로 빠르게 보고 나왔다. 나의 로프트 방문 명분은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일본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 코너만 집중해서 보았다. 다양한 오너먼트부터 소품, 식기류 등 모든 것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여행의 명분'으로 삼을 만한 것은 바로 엽서였다. 엽서.. 뻔할 수 있지만 나는 여기서 '잃어버린 40년으로 인해 여행가지 않는, 움직이지 않는 일본인들'을 위해 어떤 마케팅을 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귀엽고 예쁜 엽서들은 당연히 있겠지만 가장 많은 칸을 차지하고 있는 엽서는 일본 각 지역의 관광지를 크리스마스화 한 것들이었다. 아사쿠사, 스카이트리, 도쿄타워 등 도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부터 긴보초 거리, 요코하마 항구, 오사카, 삿포로 등을 담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구매하는 일본인들이 꽤 있었다. (나도 하나 사보았다.) 이후 이러한 엽서를 만든 이유를 알아보니 옛날보다 줄어들었긴 하지만 일본인들은 가족, 지인, 연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이 카드를 소중히 간직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된 일본의 관광지를 자주 접하게 함으로써 결국 가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첨부한 사진들을 보면 느끼겠지만 보고 있으면 이곳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물씬 든다.
로프트가 있는 긴자를 벗어나 마지막 목적지 '도쿄타워'로 향했다. 도쿄타워로 향하기 전 일루미네이션의 성지 롯폰기를 잠시 지났는데, 수많은 인파를 보며 롯폰기 거리의 일루미네이션과 도쿄타워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경관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정말 도시를 상징하는 하나의 건축물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롯폰기에 잠시 머물며 일루미네이션과 도쿄타워를 사진으로 담아보았는데, 11월~2월 여행객이라면 꼭 한 번 가볼 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일루미네이션은 기간이 달라질 수 있으니 반드시 일본 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가길 바란다.)
롯폰기에서 바라본 도쿄타워의 모습은 사진 속에 넣어두고 더 늦기 전 부랴부랴 도쿄타워로 향했다. 롯폰기에서 도쿄타워까지는 도보로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긴 했지만 이날 날씨가 너무 추워 사악한 물가로 유명한 도쿄의 택시를 탔다. (지하철로 25분, 택시로 8분이라 택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유혹을 뿌리치고 도착한 도쿄타워는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라웠다. 1층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포토스팟으로 작은 '미니 도쿄타워'를 만들어 놓았고, 다양한 부대시설들도 있었다. 단순히 타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시설 같은 느낌이었다.
더 깊숙이 보기 위해 도쿄타워 내 상점가인 일명 풋 타운에 들어갔다. 입구부터 나의 눈을 사로잡은 간판이 있었는데, 바로 '일본의 타워 스탬프 투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유산 스탬프, 국립공원 스탬프 등 한 때 성지순례처럼 MZ세대들에게 인기를 모은 바 있는데, 이와 동일한 마케팅 방법이 도쿄타워에도 있어 반갑기도 하고 스탬프투어의 마케팅 효과를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국내의 스탬프투어는 대부분 단발성, 기간성 이벤트로 진행된다는 것인데 일본의 타워 스탬프 투어는 365일 지속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움직이지 않는 일본인들을 위해 챌린지 마케팅을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최근 세대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키워드로 살펴보았을 때 좋아하는 취미 등을 성지순례로 체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마케팅 전략으로 느껴졌다.
도쿄타워 구석구석을 투어하고 돌아온 숙소에서도 도쿄타워가 선명하게 보였다. 역시 도쿄타워는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가장 예뻐 보이긴 했다. 12시가 넘어가며 주변의 불빛들은 희미해져 갔지만 도쿄타워의 불빛을 여전히 밝게 빛났다. 이처럼 나도 언제나 밝게 빛날 수 있길 다짐하면서 이날 밤 핑계 아닌 핑계, 명문을 갖고 떠난 도쿄 여행의 마지막 밤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