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
외쳐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그’가 있습니다. 너무 좋아했는데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는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니다가 우리가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어떡하지?” 그 당시 그 질문은 제게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저와 만나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저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 같습니다. 그런 거라고 믿고 싶은 거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질문 때문에 저는 그를 만나는 동안 사랑에 빠진 저 자신을 숨겼습니다. 티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좋았습니다. 누구보다 그와 가깝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수년이 지났지만 힘들 때면 여전히 그가 생각납니다. 서로 가장 밑바닥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놀랐습니다. 대게 남자들은 자기 자랑, 자기 잘난 점만 얘기하기 마련인데, 그는 자신의 힘든 얘기를 제게 다 털어놨습니다. 보잘것없는 제게 누군가가 의지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에게 마음을 열고 아무에게도 못한 얘기를 털어놨습니다. 그렇게 서로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은 물론, 그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든 나머지 그의 힘든 현실은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없어 힘들었고, 제 현실도 힘든데 더 힘든 얘기를 듣자니 너무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힘들다는 얘기를 그에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상처를 주고 끝났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어렸던 거 같습니다. 그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와의 결론은 비슷할 거 같아 더 이상의 인연은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할 수 없지만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와 그렇게 사랑했노라고. 하루가 끝난 후 피곤하지만 밤새 통화했다고. 별빛 아래에서 끝내주게 멋있는 노래를 함께 들었다고.
그는 저를 다 잊었겠지요. 다른 사람도 만나고, 저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수년이 지나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저에게 자신의 속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괜히 그 사람처럼 매일 전화하라고 졸라도 보고, 힘든 얘기를 해보길 바랐지만, 그처럼 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아니니까 무리였겠죠. 그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이 제 인연이 아니었듯이, 그가 만나는 사람도 인연이 아니길 심술 맞게 빌어봅니다.
외쳐봅니다.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를 정말 좋아했노라고. 그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네 생각이 난다고. 하지만 말할 순 없다고. 그래서 이렇게 외치는 거라고.
2016.03.0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