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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곡예사 Mar 07. 2016

외쳐본다.

생각 나눔

외쳐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그’가 있습니다. 너무 좋아했는데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는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니다가 우리가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어떡하지?” 그 당시 그 질문은 제게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저와 만나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저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 같습니다. 그런 거라고 믿고 싶은 거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질문 때문에 저는 그를 만나는 동안 사랑에 빠진 저 자신을 숨겼습니다. 티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좋았습니다. 누구보다 그와 가깝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수년이 지났지만 힘들 때면 여전히 그가 생각납니다. 서로 가장 밑바닥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놀랐습니다. 대게 남자들은 자기 자랑, 자기 잘난 점만 얘기하기 마련인데, 그는 자신의 힘든 얘기를 제게 다 털어놨습니다. 보잘것없는 제게 누군가가 의지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에게 마음을 열고 아무에게도 못한 얘기를 털어놨습니다. 그렇게 서로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은 물론, 그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든 나머지 그의 힘든 현실은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없어 힘들었고, 제 현실도 힘든데 더 힘든 얘기를 듣자니 너무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힘들다는 얘기를 그에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상처를 주고 끝났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어렸던 거 같습니다. 그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와의 결론은 비슷할 거 같아 더 이상의 인연은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할 수 없지만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와 그렇게 사랑했노라고. 하루가 끝난 후 피곤하지만 밤새 통화했다고. 별빛 아래에서 끝내주게 멋있는 노래를 함께 들었다고.


그는 저를 다 잊었겠지요. 다른 사람도 만나고, 저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수년이 지나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저에게 자신의 속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괜히 그 사람처럼 매일 전화하라고 졸라도 보고, 힘든 얘기를 해보길 바랐지만, 그처럼 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아니니까 무리였겠죠. 그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이 제 인연이 아니었듯이, 그가 만나는 사람도 인연이 아니길 심술 맞게 빌어봅니다.


외쳐봅니다.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를 정말 좋아했노라고. 그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네 생각이 난다고. 하지만 말할 순 없다고. 그래서 이렇게 외치는 거라고.


     

2016.03.0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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