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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Jun 25. 2023

비건 고백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직장 동료가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그가 마침 내가 있는 곳으로 교육을 온다기에 오랜만에 얼굴을 볼 겸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었다. 찌개나 국밥을 먹을 때는 공깃밥 두 그릇은 기본이었고, 면을 먹을 때는 무조건 곱빼기를 시켜 먹은 후에 밥을 말아먹었다. 고민 끝에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만두전골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샤브샤브라 양도 푸짐한 데다가 먹고 남은 육수에 밥을 볶아 그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요량이었다. 우리 일행은 3명이었지만 그를 생각해 4인분을 주문하려는데 그가 한사코 나를 말렸다. 자기는 괜찮으니 조금만 시키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밥을 먹는 것도 5년 만의 일이라 그 간 식사량이 줄었나 싶었다. 휴직기간 동안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전골 육수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냄비 뚜껑을 열어 야채와 고기를 넣으려는데 그가 갑자기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저, 같이 못 먹어서 어쩌죠? 사실은 제가 비건이 되었거든요” 

세상에나, 그가 비건이 되었다니.

하마터면 들고 있던 냄비 뚜껑을 놓칠 뻔했다. 그의 도시락에는 양상추와 오이, 방울토마토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회식 때 2차로 간 치킨집에서 혼자 닭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우던 그가 비건이 되었다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비건 고백에 당황한 나는 전골에 쇠고기를 넣어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 고기를 넣지 않으면 그와 함께 먹을 수 있을까 해서다. 그렇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느새 잘 익은 만두가 전골 위로 하나 둘 떠오르고 있었다. 


쇠고기를 한 움큼 쥐고 넣지 못하는 나를 보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채식이 정말 좋지만, 오늘처럼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는 행여나 상대방이 불편해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아내가 싸 준 채식 도시락을, 나는 만두전골을, 그렇게 우리는 마주 앉아 각자의 식사를 했다. 고기를 즐겨 먹었던 그가 갑자기 비건이 된 계기가 궁금해 물었다. 그는 식생활과 관련된 여러 책을 접하며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환경, 동물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비건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이제 비건 2주 차에 접어든 그는 고기를 비롯해 생선과 유제품을 모두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채식을 시작하고 체중이 7킬로그램이나 줄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며 우리에게 단 며칠이라도 채식을 실천해 보길 권했다.


나도 한때 육류와 가금류를 제외한 해산물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생활을 두 달 정도 해 본 적이 있다. 당당하게 비건임을 공개하는 그와 달리 나는 그렇지 못했다. 같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직은 우리 정서이기도 하고, 행여나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 몰래 실천했었다. 내가 고기에 손을 대지 않자 속사정을 모르는 직장 동료들은 내 접시에 고기를 여러 차례 올려주기도 했다. 챙겨준 걸 먹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비건이라고 말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은밀하게 하려니 오래 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의 비건 고백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보며 ‘자기 다운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삶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 때 즐겁고 행복한지를 알아가는 것도 자기를 찾는 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비건 생활로 실천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비건과 명상으로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며 이제는 다시 예전의 식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아내도 함께 비건이 되었다고 하니 꾸준히 실천하는 일도 수월해 보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오랜만에 만난 그는 진정한 자기를 찾은 것처럼 예전보다 한결 평온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그가 오래도록 건강한 비건 생활을 즐기며 자신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가꾸어 나가는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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