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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Nov 18. 2023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순수한 것이란 어떤 상태일까?

은유작가는 '순수'란 불순물이 그대로 섞여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흔히 우리는 불순물을 모두 걸러낸 깨끗한 상태를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완전 무결한 것은 없다. 특정 성분만을 남기기 위해 여과를 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형질이 변하거나 무엇인가 침투되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거르지 않은 상태, 좋든 나쁘든 모든 성분을 포함하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순수'라고 한다면 사람의 순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함, 자신의 결점과 한계를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을 모습이 순수함 아닐까.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작가가 한국시 번역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한국 시를 외국어로 번역해 출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국어로 쓰여도 읽기 어려운 시를(아니 안 읽는데..) 외국어로 번역한다니. 대체 한국시 번역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시 번역가들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순수'라고 표현했나 싶었다. 그런데 책 제목에 대한 은유작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작가가 말하는 순수에는 작가들의 과감한 자기 고백이 있었다.

한국 시 번역을 하지만 본업이 따로 있는 작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가, 성인 ADHD임을 고백하는 작가, 의대생으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도계 미국인이 한국어를 사랑하는 마음에 한국 시 번역을 시작하게 된 일과 같이 책 속의 인물들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때마침 공주시에서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를 주제로 북토크가 열린다기에  은유 작가를 만나러 갔다.



나는 은유작가의 팬이다. 일방적이긴 하지만 인스타를 통해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라 작가의 실물을 보아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일은 내게 연예인을 보는 것만큼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이다.

은유작가는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상하는 상상력이 넘친다. 익숙한 표현을 분해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와 결합시킨다. 그렇게 창조된 그녀만의 언어에 독자들은 갇혀 버릴 때가 있다. 이번 책에서 나는 '슬픔의 방류'라는 표현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한 글자씩 꼭꼭 눌러 옮겨 적었다.


'슬픔의 방류'라니.. 표현하지 못한 억눌린 슬픔들이 떠오른다. 닫혀 있던 수문이 열리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리는 온갖 종류의 슬픔들. 대체 어떤 슬픔들이길래 바로 비워내지 못하고 이토록 쌓아두었을까. 작가가 사용한 두 단어가 살아있는 감정이 되어 내 마음속에 새겨진다. 이것이 내가 은유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다.


"작가님은 어떤 감정이나 현상을 표현할 때 작가님만의 단어를 잘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슬픔의 방류'라든지, '술은 신체 유연제'라는지 같은 표현들이요. 시를 많이 읽은 것이 이런 표현들을 창조하는데 도움이 되셨나요.?"라고 용기 내어 작가에게 물었다.


은유작가는 영업비밀을 물으시면 어떻게 하냐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글을 쓸 때 서사를 중심을 쓰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자신은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 줄 한 줄을 고심하며 쓴다고 했다. 독자들에게 더 정확하고, 세밀한 의사전달을 위해 문장에 집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장 한 줄을 붙잡고 씨름한 결과를 독자들이 알아줄 때마다 너무 감사하다면서 말이다.  


어떤 독자는 은유 작가의 에세이나 글쓰기와 관련된 책은 모두 읽었는데, '있지만 없는 아이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룬 르포는 아직 읽지 못했다고 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마주할 용기가 없으며, 책을 읽는 동안 닥쳐올 슬픔을 피하고 싶은 자신 같은 비겁한 독자에게 쓴소리 한마디 해달라며 조언을 구했다.

나 역시 그런 독자였다. 책을 보고 있지만 정작 내가 책을 통해 보는 세상은 제한적이었다. 위안과 재미를 주는 책 위주로 읽으며 나만의 성을 더 높이 쌓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은유작가의 처방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좀 슬프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사고를 친다며 우리는 슬픔을 방류해야 한다! 고 나를 손짓하며 말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들도 온전히 수용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김용균의 어머니 왜 아들의 잃은 슬픔을 눌러 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지, 그들의 용기를 배우고 들어 보아야 한다고.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 모르게 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견일 수 있다. 편견을 편견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사람에 대한 편견을 허물기 위해서는 낯설고 어두운 이야기도 접해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밤, 어두운 조명 아래서 은유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느새 마음의 허기가

사라졌다. 북토크가 끝나고 작가의 사인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펼쳐 사인을 받았다.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

은유작가가 내게 던져준 메시지.

나는 이렇게 숙제를 받아 들고 오늘도 나만의 언어를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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