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의 나는 미니작업실을 운영하는 미술선생님이었다. 그렇게 한참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던 시간이 지나 지금은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일을 쉬게 됐다. 그렇게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일을 빡빡하게 하다가 갑자기 일의 양이 줄어드니 그 여유 있는 시간만큼 놀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괜히 죄책감이 느껴지고 뭔가 쉬고 있다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 안 그런 척하기도 해 보고 살림살이를 살펴보며 바꿔보기도 했다.
이어서 반려동물로 햄스터를 키우게 되면서 애정을 쏟았다. 모든 반려동물은 시작은 아이로부터 시작하지만 식기들을 씻고 베딩을 바꿔주는 작업을 할 때면 시작은 귀찮아도 이상하게도 끝낼 때는 내가 쓸모 있다는 뿌듯한 느낌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귀찮고 손이 많이 가지만 결과가 썩 드러나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집중 몰입하는 과정을 좋아해서
전공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것은 전부 비슷한 결을 가졌다. 아동미술을 할때도 아이들이 그 나이의 시선으로 그린불완전한 그림들이 예뻐 보여서 기쁨이 되곤 했다.
사실 전공인 그림도 그랬다. 그림이 실력이 있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좋아해서 시작했기에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다. 글쓰기도 말주변이 없는 내가 글로나마 편하게 털어낼 수 있어서 꾸준히 하게 되었고 마음공부도 한 번에 끝낼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쭉 이어오고 있다.
이어서 눈에 들어왔던것은 가드닝이었다. 그렇게 가드닝도 한국이라는 계절에 맞춰 사계절을 더욱 입체감 있게 배우게 된다.
인스타그램에 눈길을 끄는 식집사 들은 규모나 식물에 대한 지식도 해박한 편이다. 이분들은 최소 5년~10년을 가드닝을 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이분들의 노하우를 배워가면서 이제 반년이 지나가는 입장이라 그렇다 할 실력은 없지만 여전히 확실한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샘물 같은 즐거움을 준다.
가드닝을 하며 배우는 것들
가드닝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인내하는 시간이다. 새순을 기다리는 시간, 화초가 다시 살아나기까지 기다려주는 시간, 꽃봉오리를 기다려주는 시간, 흙이 마르는 걸 기다려주는 시간 등등이다.
열정의 거리감도 배울 수 있다.
내 열정을 과하게 다할수록빛에 타 죽거나 물로 고문을 시킬 수 있다. 또 너무 관심이 없어도 시들어 죽게 만든다.
환경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햇빛이 들어오고 나감에 민감해지고 습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당연히 화단이나 도로를 꾸며주는 화초들에게도 시선이 자주 가게 된다.
아직은 노련하지 않지만 작은 능력이 쌓이고 시야를 계속 넓혀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의도하지 않게 품평을 참 많이 받게 된다.
이제는 남의 평가에 유연해졌나 싶다가도
"그 귀찮은 걸 하다니~" 하찮다는 시선이 느껴지면 수치스러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안다.
그렇게 하찮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없는 사람과는 물과 기름처럼 신념이 다르다는 것을.
설득할 필요도 설득할 수도 없다는 것을.
나도 예전에는 삶은 전리품을 많이 쌓아두는 삶을 최고라고 여길 때가 있었다. 달리기를 해서 메달을 따는 순간만을 위한 삶은 달아도 공허하다.
삶을 달리기만으로 채우기에는 곳곳에 나의 시선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많다.
나에겐 가드닝이 그랬듯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시선을 끌고 즐거운 무엇이 가 닿기를.
그로 인해 일상에서 샘물같이 청량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초록이인줄 알았던 아이가 향기까지 있는 꽃을 피워주었다. 초보 식집사는 이런 뿌듯함에 기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