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면서 자신이 어떤 쓸모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때때로 나 스스로도 살아내기 벅찰 때가 있다. 이때는 나 스스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예민한 감수성을 가져 참 많은 감정을 느낀다. 이성 한 스푼 넣은 감정을 충분히 정제하는 시간을 거치고 승화시킨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인다. 마음이 힘들 때는 자신이 끌리는 예술가들의 힘을 빌려 음악도 들어보고 미술도 보고 또 글을 읽는 구독자님들처럼 글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눔을 받는 일이다.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을 청각으로 시각으로 내 마음속, 고유의 백지를 찾게 도와준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기심으로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기준값이 높은 사람들은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많은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착한 사람이 잘못 1mg 했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처럼말이다. 더 바르고 더 괜찮아지고 더 나아지지 않는 정직한 성장통으로 힘듦을 겪을 때가 있다. 자신의 일상에 나름의 도덕성과 규칙과 남들에게 보이는 면을 관리하는 여러 가지 면들을 봤을 때 한 번씩 무료해지는 순간이 있다. 일상이 매우 착착 맞아떨어지지만 불편한 마음이 생겼을 때, 한 번은 변화하거나 성장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잎사귀도 푸르고 벌레도 없고 딱히 부족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멈춰있는 것 같은 화초들이 있다. 여지없이 특유의 고요한 시간을 거치고 꽃대를 올리거나 새순을 만들어낸다. 유난히 새순 내기 오래 걸린 나무들은 준비한 새순이 꽤나 많은 것을 보고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약 특별히 잘못한 것은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변화를 느끼고 싶다면 지금이야 말로 자신이 빠질만한 취미를 꼭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라면 한 번도 안 했을 것들을 선택해 봐도 된다. 자신의 감성에 영양소를 많이 넣어줄 때이다. 내 감성이 메마르지 않게 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남들에게도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남들이 주는 힘든 타격에도 수많은 쿠션이 되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가드닝에 한참 빠졌을 때 일이다. 나 스스로 제어가 안될 만큼 너무나 열정적으로 하루에 한 번씩 식물을 보러 갔었다. 들여오고 죽어 나가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식물들 중 우리 집에 잘 맞는 아이들은 잘 성장했고 일부는 자연적으로 죽어 나갔다. 그렇게 정신없는 열정은 내가 마치 못해본 풋사랑에 빠진 것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열정적으로 빠져서 집중했던 것 같다. 그때 사실 그런 나 자신을 보고 이렇게 정신없이 달리면 내가 멈출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었다. 나 혼자만 살면 모르지만 남편 방이든 딸 방이든 모든 방이 식물로 가득 찬 그런 집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다 보니 우리 집에서 필요한 풍성함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들일수 있는 정성의 최대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배움이 부족한 그때뿐이었다. 집중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감각을 키우다 보니 이제는 하루가 걸러 흙을 뒤집어 보는 일도 매번 물을 못줘 동동거리는 감정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고 그런 감정조차 들지 않는다. 이제는 잎새만 봐도 '목이 마르는구나~, 새잎이 유난히 쭈굴거릴 때 물이 부족하구나~, 햇빛이 좀 세구나' 등등을 알게 된 것이다.
누가 일부러 시킨 것도 아닌데 유난히 집중이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게 특별히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거라면 싹을 틔워보기 바란다. 취미와 덕질의 경계를 넘나들며 콩나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잭과 콩나무'처럼 콩나무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건 아마도 취미정도가 아니라 이제 특기가 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면 오히려 그때의 시작을 해본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의 특기로 일상에 기쁨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좋은 일이다.
내가 마음 곳곳에 기쁨이 넘친다면 지나가며 하는 말씨, 행동 하나하나가 사려 깊어지고 기쁨이 묻어난다. 내가 있는 곳에 밝은 에너지를 선사하는 것만큼 좋은 나눔은 없다.
아이 돌보는 일, 식사 챙기는 일 등등을 하면서도 '글 쓰는 일과 가드닝'은 꼭 챙겼다. 그때는 가장 내가 제대로 쉬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이 쉬고 있다는 감각은 힘이 빠지는 쉼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 생기고 잔잔한 기쁨으로 느껴졌다. 잔잔한 기쁨에 익숙해지면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는 내가 되어있기 마련이다.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활력의 쉼을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