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다 하겠다는 집착

[일상의 내면을 그립니다. 시즌2- 엄마의 작업실]

by 미니작업실


나는 독립과 자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실천하기 위해 행동하는 중이다.


여러가지의 독립과 자립이 있지만 나는 그 말이 사람과의 독립, 자립에만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단히 아무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고 도망가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붙잡고 그것이 독립이라고 굳게 믿었다.

한쪽으로 너무 무거운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은 그것이 옳은 결심이라 해도 썩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독립을 마음 먹고 도움을 거절할수록 내게 더 도움을 주려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모든 좋은 도움들까지도 다 쳐낸적이 있다. 나 스스로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마음공부에서도 나타난다. 유연하기 위해서는 영향받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다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요즘같이 관계망이 많아지는 시점에 내가 선택한 수행은 나름의 고행이었다.




그렇게 최대한 들은 말도 듣지 않고 그렇게 홀로 살아본 적이 있다. 그건 20대에도 그런 시간을 가졌고 30대 초반에도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군중들과 최소한으로 인간관계를 맺지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내가 생각하는 생각과 감정을 구분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가졌다. 그것이 좀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정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내가 워낙 타인의 감정과 주변 공간의 분위기에 많이 영향을 받는 성격이라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시간을 통으로 갖기도 했다. 나는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인지라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혼자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배척하고 오랫동안 가족들과 단절하며 지낸적이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개입은 허용했다. 그런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면서 살게되니 참 편하고 생활이 단조로웠다. 그러면서 생각의 방향이 더 다양해졌다.






나는 내가 어느정도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지자 점점 더 나만의 영역 넓히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한계가 있었다. 나부터 행복한 것은 도착점이나 목적지가 아니었다. 가만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왔다면 내가 혼자 사유하면서 얻은 경험적으로 정리된 생각들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절대 대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과의 정서적인 유대감의 결핍, 고질적으로 차별받는 성역할에 대한 반항심과 분함, 결혼에 대한 수많은 불편감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나는 그런 부정적 감정들을 계속 피해다니다가 결국은 한번 뒹굴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해방시켜달라는 마음인건지 알아채야했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내 감정에 충실히 귀기울이는 연습을 했다. 그전에는 달래는 연습만 했다면 이번에는 조금더 안정적으로 차분하게 지켜보는 연습을 했다.




육아할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해보았다. 아이가 짜증을 확 내면 나도 같이 화나는 그 감정을 지켜봤다. 내가 어쩌다 나오는 화 까지 다 컨트롤할 수는 없겠지만 특정한 상황에서만 반응하는 감정이 있다. 특히나 상황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 지점을 만나게 되면 꼭 작업실에 와서 시간을 내어 그 감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런 시간을 한참을 가지면서 크게 깨달은 바는 나는 혼자서 다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좁은 시야에서 모든 불편한 것들을 다 차단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하기에는 사람은 다양하고 내가 만나야할 경험과 도전해야할 체험이 기다리고 있는 긴 인생이었다.


나는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홀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전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영안으로 보는 나의 본성은 우주와 연결된 한 몸이지만 지금 개체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나는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내게 인연지어져 연결되는 그 순환을 오히려 자유롭게 맞이하면서 내가 더 유연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준비된 제자만이 스승의 말씀들을 이해할수 있다고 한다. 나역시도 준비 되지 않은 채로 섣부르게 독립, 자립을 구호처럼 외쳤다. 그런데 모든관계는 남녀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주종 관계도 아니다. 그렇다고 늘 수평적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법을 등불로 삼아 홀로 걸으라는 법문은 내가 '홀로 걷겠다'는 집착을 내는 것 부터 이미 법문을 제대로 이해 못한것이라 여겼다. 홀로, 또 같이 걸어도 된다고 다시 마음을 먹게 되면서 누군가 내게 도움을 주는 것도 고맙고 친절로서 베푸는 것도 반가웠다. 그리고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와도 그 시간도 고마웠다. 어쩌다 글을 쓰는 시간이 주어져도 이 시간이 정말 황금같고 다이아몬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값진 느낌을 갖는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기쁨이고 누군가가 인연이 되어 소통이 된다면 더 기쁠것 같다.



관계가 얼기설기 엮여서 내가 불편한 그 패턴을 하나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다 펼쳐보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은 그 감정을 캡쳐하듯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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