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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바다

by 미니작업실

수행을 달리다 보면 옴짝달싹 못할 문제들을 직면한다.

이만하면 되었다시피 마음을 맑히고 건강을 챙기며 오로지 맑고 향기롭고 지혜로운 것들만 곁에 둔다.

그런데 내가 발을 딛고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나는 매일 고해, 즉 고통의 바다를 맞이한다.


고통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보살심이 나를 늘 지켜주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 반쪽은 중생심으로 가득 차있다. 중생심의 다른 말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 분별심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안심하는 것은 오로지 긍정적이고 밝고 맑고 향기롭고 지혜로운 것들인데 수행을 하면 반드시 허들이 생긴다. 내가 기피했던 것들, 그동안 충분히 무시하고 살 수 있었던 불편한 감정들을 풀어내라고 던져준다.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듣게 되든 아님 어떤 매체를 통해 알게 되든 마치 내 문제처럼 찰싹 붙어 죄책감을 일으키게 하고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 오래된 기억일 수도 있고 다 지났다 생각했던 감정이 떠오르기도 하고 감정이 바뀌어 그 일이 재해석되기도 한다.

이미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피해자인 경우를 알게 된다거나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된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이전에 내가 아니라고 부정했던 것들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해 준다.


차라리 죄책감을 덜 느꼈으면 좋겠지만 이런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 사건을 지혜롭게 풀어내는 것 자체가 수행이기에 매사 내 행동에 강박이 생기기도 한다. 강박증처럼 지켜봐 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감정을 풀어서 해석해야 하는지 모호할 때가 있다.


지난번에 찾아온 문제도 그 순간에는 그 일에 압도당해서 정말 옴짝달싹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 다가온 문제도 분명 나의 무의식의 문제이다.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감정이 풀어달라 올라온 것이다.

모든 불안정한 감정은 불성의 씨앗이 된다.

이번에 다가온 문제도 언젠가 글로 잘 승화돼 해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용기가 있고 지혜롭게 잘 해석해서 더 폭넓은 시선을 가지고 싶다.

보다 더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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