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돼서 기뻤지만 곧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자 한동안 결이 맞지 않는 설렘과 자각이 반복되었다. 현실에서 일상을 살고 즐거움을 찾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내 곁에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자각이 정말 하늘과 바다의 수면처럼 딱 붙어 넘실대는 기분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탄도 하고 깊은숨을 쉬어볼 수도 있지만 곧 바다에 몸을 담근 내 몸을 바라보면서 필연적인 운명, 숙명에 갇혀있는 걸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런 기분을 오롯이 느끼자 오히려 너무 들뜨지도 않고 또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중간의 마음이 지속되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기쁨을 찾거나 설렘을 쫓았다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주변의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새해가 되면 새것을 쫓았다. 그동안 안 해본 것에 매료되어서 더 해보고 싶은 충동을 가졌다. 그런 걸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런 류의 위로가 아니라 다른 걸 깨닫고 싶었다. 다시 나를 세울 동력이 필요했다.
계속 피로해지는 내 몸을 발견하고 커피를 끊고 하루동안 졸리면 그냥 자면서 피로를 풀었다.
첫 번째로 끼니 잘 챙기기였다.
날씨가 추워 오락가락하는 요즘 쉬 움직일 수 없으니 먹는 것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면 감정을 해소하기도 바쁜데 불필요한 걸 먹어서 기운을 더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싶었다. 평소보다 식재료를 신중하게 고르고 이미 알지만 귀찮다고 미룬 것들을 조금씩 해봤다.
평소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 등 취미활동은 잘했지만 내 끼니를 잘 챙기는 것은 좀 귀찮게 여겼다. 특히나 아이는 정성껏 요리해 주지만 나는 귀찮아서 라면으로 때우는 일도 많았다. 특히 먹을 때 대충 서서 먹지 않고 한 그릇이라도 깔끔하게 세팅해서 먹었더니 든든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건강할 때는 몸이 있다는 인식이 되지 않을 때이다. 특별히 거슬림이 없는 몸이 되자 일상의 다른 부분도 루틴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지킨 것은 창문 블라인드를 올리는 일이었다. 흐리더라도 커튼, 블라인드를 걷어내는 일을 꼭 했고 해가 지면 다시 닫고 내리는 걸 꼭 챙겼다.
집안에만 있게 돼도 창밖을 내다보니 훨씬 기분이 개운했다. 자꾸 멍하게 흐려지는 정신을 위해 보드판에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적어두기도 했다. 시각적으로 보이니 필요한 것만 해두고 나머지 시간에는 좀 쉬어도 이해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어르신들에게도 항상 별 할 말이 없으면 '끼니 잘 챙겨 먹어~', '오늘 날씨가 춥네~~ 따뜻하게 보내요~' 인사 나누는 것도 알고 보면 하루의 함축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루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다음 채우고 싶은 단추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