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작업실
작년 : 아빠~ 맨날 이거 봐?
올해 : "엄마~ 텔레비전에 이것만 나와?
“이걸 몰라? 요즘에 이거 모르면 대화가 안 돼~”
“너도 한번 봐~”
그러면서 그 가수들의 가진 캐릭터에 대해 줄줄 읊고 계셨다.
우리 친정은 산골에 있다. 산골에 인적도 드문 곳에 흥이 나는 프로가 생겼으니 '미스 트롯'이었다.
점점 우리 친정에는 트로트를 모르면 대화가 안되기 시작했다. 모르면 세상 역적이요. 알면 친척이었다.
좋고 싫고 가 분명한 우리 집 성격에 맞춰 트로트의 박자에 맞춰 밭 채소까지 들썩인다.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 아기가 있어서 더더욱 안보는 데 친정에 와서는 구분 없이 본다. 전문가분들이 보면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면 안 좋다고 하지만 사실 바꿀 수 없었다. 친정 분위기에 따라 말씀드려서 될 게 있고 전쟁하느니 포기하는 게 빠른 게 있다. 우리 집은 포기하는 게 빠르고 차라리 이런 집의 분위기에 맞춰보는 게 편하다.
사실 ‘미스 트롯’도 엄청 재밌게 봤다. 특히나 우리 아버지는 재방, 삼방, 밭일하실 때마다 매번 보셨다. 방송을 볼 때도 그 프로가 꼭 봐야 할 메인 프로이고 나머지는 그 프로를 보기 위해 쉬어갈 때 보곤 하셨다. 그러더니 ‘미스터 트롯’에도 엄마마저 빠져 보기 시작하셨다.
마침 나도 전시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일상에 변화가 없었는데 그 프로를 보면서 은근 스트레스가 풀렸다.
누가 우승할지 조마조마하게 보면서 내가 마치 그 가수가 된 듯 침이 말랐고 눈물도 글썽거렸다. 참여한 다양한 가수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자극이 많이 됐다.
나는 이제 개인전을 막 하기로 한 초보 작가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초보 작가인데 그분들을 보면서 내가 실력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자세로는 어떤 면이 필요한지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꿈의 영역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필수인데 나는 아이가 크면 대학원을 다닐 목적으로 20대 때 모아둔 비상금이 조금 있었다. 난 이번 전시를 위해 그 돈을 풀어서 쓰기로 한 거였다. 내 입장에서는 없어질 수도 있는 돈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위한 나의 투자였다. 재료비, 교통비, 숙소랑 액자 값, 가족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여러 가지 뻔뻔함을 감내해야 했다. 나는 무명의 과정을 겪고 있고 그 과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늘 달기만 한 게 아니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그림도 준비해야 하고 그 시간을 내고 노력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기본 값이다. 나는 그 기본 값을 해내기도 전에 불평, 불만, 남 탓이 많았다. 뭐라도 하려고 하면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런데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참여 가수들의 개인사를 보면서 그런 남 탓, 핑계, 시기심에 대해서 다시 점검하고 내려놓게 되었다.
우리 집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가족여행을 하면 꼭 아빠의 취향대로 음악을 들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 멜로디가 그렇게 싫어서 이어폰을 꽂고 각자의 음악을 반항적으로 크게 들으며 나의 고상함?을 고수했다. 그런데 요즘 나보다도 젊은 분들이 부르는 트롯은 정말 신선했다. 그 태도에 반했다. 어떤 장르든 사람에 따라 저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미스터 트롯’이 부모님은 웃게 만들고 나도 철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친정집에는 트롯으로 가득한 집이 되었다. 닭들도 의무사항으로 들어야 하고 새들도 나비들도 꽃들도 우리 집을 스치면서 그 트롯을 듣게 되었다.
아마 우리 부모님은 한동안 트로트 매들리를 이어갈 것 같다. 아마 내 딸도 무의식적으로 흥을 만들어낸 멜로디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