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작업실
나는 그림 전시를 하면서 만났던 두 분의 사장님이 계시다.
한 분은 액자, 표구를 하시는 분이셨고 한 분은 내 액자 된 그림을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겨다 주는 운송하시는 분이셨다.
액자, 표구 사장님은 처음에 인상은 좀 어수룩하셨지만 설명을 들을 수록 하시는 말씨나 행동에서 엄청 내면이 강한 분이라는 게 느껴지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일 수록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고집들이 전혀 보이지 않으셨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자부심이라는 건 잠시 있는 척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그분 뒤로 수많은 그림들이 그 사장님 손길을 거쳐 예쁘게 정돈되어있었다.
그리고 직접 보증금을 드리려고 했다. 그때 사장님은 더 멋진 말씀을 해주셨다.
"액자를 받고 입금하세요.
액자를 걸고 일주일을 보다가 입금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천천히 보시고 입금해주세요.
한참 어리기도 하고 첫 전시하는 작가라 무시하며 말씀하실 수도 있었지만 너무나 정중하게 얘기해주셨고 말씀 내용도 좋았다. 정말 믿음이 절로 갔다. 그리고 직접 그림을 받아보면서 액자가 너무 예술이었다.
그동안 학생들 그림 전시를 위해 단가를 맞춰 가장 저렴한 액자로 싼값에 맞췄던 것 과는 많이 달랐다.
액자를 받고서 액자 값을 깎은 게 미안해질 정도로 액자 뒷면 마무리까지 마음에 들었다.
" 액자 너무 마음에 들어서 5만 원 조금 더 부쳐드렸어요~"
"네 작가님~ 앞으로 지방에서 하시더라도 저희 배송까지 다 해드립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10만 원을 더 부치고 싶었지만 나도 돈이 많지 않아서 5만 원을 더 부쳐드렸다.
속마음으로 돈을 부치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았고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운송하시는 사장님이 오셨다. 소개를 받은 사장님께 전화를 했지만 그분이 아닌 다른 분의 전화번호를 받게 되었다. 좀 급한 마음에 믿기로 하고 노파심이겠지 하며 찜찜함을 무시했다.
전시 그림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맞으시죠?
소개받아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원래 하시던 분이 급한 일이 있어서 다른 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보통 그림 작업 운송은 직접 수거, 철수, 포장까지 포함이고 고가의 액자, 작품이란 걸 알기 때문에 포장도 굉장히 숙련된 분이 오신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찜찜하긴 했다. 차라리 돈을 좀 더 주고서 다음 분에게 연락했으면 좋았을 거 같았다. 이 일에 대해 전무한 일반 운송업체 사장님이 도착하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는데 보자마자 반말도 아닌 공손함도 아닌 말투로 내내 적극적이지도 않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분이 오셨다. 그저 '어르신'인 것만 내세운 권위적인 분이 오셨다.
"액자 안 나와있네~~? "
"네? 작업 운송하시는 분 아니세요?
보통 포장하고 내리는 것 까지 포함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미 포장된 것도 트럭에 옮기는 것도 안 하려고 하셨다. 그때부터 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갤러리가 고층도 아닌 고작 2층이었는데 말이다. 이것보다 훨씬 값싼 물건도 얼마나 정확히 정성스레 택배가 오는데 이 분은 그것마저 투덜거리며 자기 일이 아니라고 했다. 보통은 철수를 맡기고 포장하고 내리는 것 까지 포함인데 이 분은 정말 하나도 모르셨고 실제로 너무 귀찮아하시고 도우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관장님, 아트디렉터님 하고 마무리 얘기를 하는데 와서 도우라며 호통을 치셨다.
자기만 일하냐고 하셨다.
나는 어쨌든 일이 잘 마무리가 되었으면 싶어서 점심값이라도 드리고 마음을 풀어 드리려고 밑에 내려가 봤지만 그분은 어디에 계셨는지 멀리 숨어 계셨다.
보통 어느 정도 철수가 된 걸 보고 여유 있게 서울역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계획에 없는 작업 철수를 부랴부랴 하게 되었다. 전시를 구경하러 왔던 손님으로 온 학생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서울에서 전시한다고 지방에서 기꺼이 와준 학생인데 일을 시키는 기분이 너무 미안했다.
어찌 됐든 관장님과 아트디렉터 님도 서로의 당황함을 위로를 하며 마무리를 했다.
나도 아이를 맡아주었던 친정을 들러 내려가는 도중 그림이 먼저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
"도착! 연락바람" "비번 요망"
그냥 집 앞에 두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손절의 의미로 점심값으로 2만 원을 부쳐드렸다.
다시는 보지 말자는 의미로 말이다. 부정 타는 기운까지 모두 가져가시라는 의미였다.
만약 내가 이 분이라면 소개해준 친구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정성을 다했을 것 같다. 그분은 이 친구와 거리를 두는 게 좋아 보였다. 처음 소개해주신 사장님은 친절하다고 했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한 번도 안 해본 작품 운송이었다면 그 순간 배우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왜냐면 일반 배송보다 값이 배로 더 비싸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돈이 굳어가는 시기에 이상한 꼰대심을 내세워 그분은 이 말을 계속 달고 살았다.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해~"
두 분의 사장님을 보면서 전시를 하는 이면에 꼭 염두해야 할 점을 배웠다.
그리고 남겨질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하나 더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