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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작업실 Aug 13. 2020

사춘기 아이와 부모

엄마의 작업실

내가 맡았던 아이들 중 참 어려웠던 아이들이 있었다. 무척 사랑받고 싶고 무척 사랑하고 싶지만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나는 10여 년간 다양한 고등학생들을 맞이하면서 저절로 생겨버린 통계가 있었는데 그 통계를 한 번씩 넘나드는 애들이 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행동에서 아주 미묘하게 읽히는 버릇이 있었다. 그 행동은 처음에 감정표현이 자유로운 개성으로 치부했다가 끊임없는 사랑, 관심을 요구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사랑이라는 것도 우리가 아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적인 사랑을 원했다. 아니면 한번도 본적없는 사랑을 원했다.



A라는 친구는 그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생 들 중에 흔히 뭔가를 통달한 듯한 얘기를 하는 애가 있다. '인생은 뭐 별거 없어. 대학가도 별거 없고.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아.' 자기 스스로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주변에  나름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친구들까지 허무하게 만들어버렸다.  허무주의에 빠진 마음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투사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사실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편하게 키우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 학원도 참 편하고 자유롭게 다녔다. 그러더니 점점 발전해서 열심히 하는 애들을 시샘하더니 흉을 보고 다니고 그 노력하는 친구를 비방하고 나섰다. 그리고 일일이 자신이 나서서 상담을 해주고 애들은 그 친구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사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전화를 하거나 하면 평소에 선생님이었던 내게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학원 비를 받는 곳에서는 완전 전쟁을 벌였다. 카드를 던지고, 돈을 던지고, '왜 순진한 애를 꼬드겨서 안 놓아주세요?',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미술을 선택해가지고~~', '재능 없다고 말해주세요~'  등등 이런 말을 한풀이 하듯 던져놓고 가셨다.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시면 아이가 모를까? 부모님의 한정적인 프레임과 열등감이 아이를 참 많이 헷갈리게 만들어놓았다. 또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심리를 스프레이로 뿌렸을까 마음이 아팠다.


또 한 B라는 친구는 부모님한테 교감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친구였다. 먹이고 입히는 돌봄만 있었던 것 같았다. 첫째 아이가 꽤 심하게 방황을 하는 집이었는데 그렇게 이 친구는 그저 조용하게 말 잘 듣는 아이로 지내야 했다. 그렇게 본인의 마음속에 슬픔과 분노가 엄청 많이 쌓여 있었다. 당연히 본인이 알 리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깨만 스쳐도 궁시렁 욕이 나오는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제정신으로 하는 게 아니었고 어디서 배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매일 욕이 나오는 일상을 보내니 어딜 가도 이만한 싸움닭이 없었다. 매일 싸워댔다. 모르는 친구, 자신의 부모, 또 나까지. 그러다가 이 친구는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 앞에서도 틱틱 말끝마다 욕이 붙어있었다. 그냥 쌍욕이 아니라 남들을 아주 거슬리게 하는 빈정거림이었다. 잘하는 애 앞에서도 올곧은 칭찬이 아니라 비뚤어진 빈정거림이 나왔다. 아주 가끔 그 친구에게 순수한 모습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저게 저 친구의 진짜 모습일 텐데 싶었다. 가끔 비행과 말썽의 언저리에서 눈에 드러나는 사건이 있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전혀 몰랐다. 결론은 집에서는 정말 순하고 착한 애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상담이 어려웠던 게 하나의 주제로 얘기를 해도 아이랑 엄마랑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이 친구의 거짓말이 보태지는 거였다. 자꾸 본질에서 왜곡되고 혼날까 봐 또 부풀리고 눈치를 안 봐도 되는 부분에서도 또 거짓말을 하고 눈에 보이는 사실을 전달해도 이만큼이나 간극이 생기니 서로를 믿지 않았다. 그때 그 아이의 비행을 잡아주면서도 양옆에서 다른 내용으로 욕을 먹으니 '내가 도대체 무슨 좋은 말 들으려 이만큼 하지?' 생각하게 했다. 가끔 입시 가이드를 했을 때도 매일매일 감정을 풀지 못한 채로 그들만의 전쟁이 일상이었다. 아마 그 부모님은 전쟁으로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이의 감정에 대해 너무 모르고 그냥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셨다. 


마지막 학생은 가장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학생이 있었다. C라는 학생은 좀 독특했다. A 학생과 상당히 비슷했는데 이 친구는 학원을 정말 놀러 왔다. 석 달을 다니면 한 달만큼의 수업 양도 안 나왔다. 그 이유의 절반은 엄마와의 데이트였다. 환불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한 달만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석 달을 내리 열심히 한 친구들만큼 잘 그리고 싶어 하는 게 문제였다. 그 학부모님은 그 아이가 조금의 힘듦과 불편한 성장통을 참지 못했는데 좀 그림이 진행된다 싶으면 바로 그날의 수업이 채 끝나기 전에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어머님이 전화를 주셨고 데이트를 나갔다. 항상 아이가 좀 울적해 보여서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이런 부모가 있다니.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나는 그 엄마가 과연 아이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싶었다. 사실 그 학부모님의 말만 들으면 본인은 친환경 주의 교육을 한다고 했다. 얽매이는 것 싫고 경쟁 싫고 편하고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며. 그런데 학부모님은 그 말씀 뒤에 자꾸 숨기는 속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우리 애 대학 잘 갔어! 천재처럼.’ 대상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 친구는 매일 어머님의 불안정한 애정의 스프레이를 맞고 있었다. ‘너는 약해. 엄마 없으면 넌 못 살아. 엄마가 다해줄게. 네가 못하겠는 전화도 엄마가 해줄게. 선생님은 엄마가 설득하면 돼. 엄만 다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공부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어~’ 늘 이랬던 엄마가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세에 조금이라도 아파서 누워있는 날이면 그 아이는 심하게 불안해 했고 방황했다. 고작 엄마의 감기에 이만큼 방황하는 아이를 그 엄마는 아실까? 내가 그 아이에게 부탁한것은 그냥 6시 수업이면 6시에 얼굴만 보고 가도 돼. 그것만 매일 해도 너 스스로 뿌듯할거라고~! 그 어떤 작은 것도 성취해본 적 없는 아이는 자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꾸 번지 점프를 해서 한번에 완벽하게 착지하는 것만 '생각'했다. 나는 20대 초반에 미술학원일을 하면서 마흔 살의 여자분을 만났었다. 어느 날 너무 당연한 듯 엄마가 아파서 자기가 밥을 굶었다며 투덜댔다. 왜 그러냐 물으니 엄마가 밥을 해야 하는데 밥을 안 해둔 채로 아파서 자기가 배고프다는 것이었다. 난 그 이상한 발언을 듣고 한참 띵했는데, 그 이후에도 다른 의미에서 띵언을 했다. 엄마는 인생을 진지하다고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뭐든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했단다. 그래서 자신은 진짜 세상은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자신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은 정말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난 그 학생이 이런 상태를 겪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방어하고 아이를 품에 끼고 키우셔서 더이상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셨다. 


법륜스님 말씀을 떠올리며 더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자기가 뭘 한다고~~ 놔두세요. 자신의 길 자기가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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