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럽게 여겼던 모두의 최선을 응원합니다.
"이번 그림 정말 망했어~! 완전 제일 망했어~! 망쳤어~!"
그림을 가르칠 때 아이들이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난 그럴 때마다 그런 말 하면 말하는 대로 된다고 잘 되고 있다고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지 망했다고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말이 더 재밌다.
"선생님~ 저 말로만 망했다고 하는 거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요~"
"진짜예요~ 저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로만 그러는 거라고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수치심과 싸우기 위해 외쳐가면서 그림을 그린다. 100프로 다했는데 고작 내 실력이 이 정도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자기 실력보다 대충 하는 애들도 많다. 그 정도 대충 하면 좀 덜 부끄러우니까 말이다.
아이들과 작은 대화 속에서 정리해야 하는 마음이 발견됐다.
무엇인가 대충, 쉽게 하는데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은 정말인지 매력적이다.
아무리 봐도 쥐어짜서 하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여유로워 보여서 오히려 나의 아등바등 한 노력은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고 촌스럽고 수치스럽다. 그런데 사실 그런 매력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 매끄럽지 않은 순간을 대하는 태도가 그런 매력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 성공(완벽한 완성이라고 부르는 무언가)의 결과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어쩌면 많은 일상은 그런 촌스럽고 아등바등 한 노력 끝에 얻어지는 작은 익숙함, 자연스러움 정도가 최선의 결과일 때가 많다. 갖고 싶은 어떤 능력, 어떤 루틴이 내 것이 되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스티커 같은 타투가 아니라 나의 찐 무늬가 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수치스러움이 있다.
배움이란 것은 수치스러움의 역 치를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모두가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떤 날은 슬렁슬렁 살아내도 의외의 큰 결과로 그 행복감이 한도 초과일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최선을 다해 달려도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은 일상일 때도 있다. 그렇게 쥐똥만큼의 행복을 쥐어짜야 겨우 하루가 살아질 때도 모두 최선인 것이다. 그런 부끄러움을 대면하고 잘 넘어가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을 때 오는 태도와 재미 짐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최선을 다한다고 촌스러워지는 나를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오늘이 꼭 필요하다.
수치스럽게 여겼던 모두의 최선을 응원합니다.